원도심 구 군청사 옆 작은 의상실인 ‘영의상실’에는 40년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앳된 중학생 소녀가 시작한 바느질이 이젠 한평생 그의 직업이 됐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60세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의상실의 수는 줄었고 영의상실이 자리한 원도심 골목은 한산하기만 하다. 그래도 영의상실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 또 내일 역시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행복을 선물해 줄 것이다.

"마음에 들 때까지”

영의상실은 40년이 된 맞춤전문의상실이다. 여성복을 주로 하지만 기성복 수선도 함께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입고 싶은 옷 디자인을 가지고 오면 소재와 입는 이의 체형에 맞춰 옷을 완성한다. 이영애 대표는 “손님들이 거의 만족해서 의상실을 나간다”며 “손님 마음은 물론 내 마음에 들 때까지 옷을 완성하기 때문에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그 이상 옷을 만든다”고 말했다.

옷 얻어 입는 재미에 시작

방학 때가 되면 예산 삽교에서 가장 큰 의상실을 운영하던 이모네를 가곤 했다. 한 달 일을 도와주면 이모가 옷 한 벌을 맞춰줬기 때문이다. 옷 얻어 입는 재미가 쏠쏠해 바느질 하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았단다. 그러다 재봉틀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몰래 밤마다 옷깃이며 주머니 등을 만들었다. 한 날은 미싱사가 일을 오지 않았다. 맞춰야 할 옷은 있는데 미싱사가 없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급해 하는 이모에게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신반의 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결국 멋지게 옷을 만들어 냈다. 그 후부터 그는 재봉틀과 평생을 함께 하게 됐다.

40년 함께 한 가위

영의상실 곳곳엔 그의 손때가 묻어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처음 영의상실을 시작할 때부터 같이 했던 가위다. 김 대표는 가위를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치 자기와 같다고 했다. 그는 “내 손때가 묻어 있어서 버리지 못하겠다”며 “왠지 나처럼 가위도 나이를 먹는 것 같기에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재봉틀과 오바로크 재봉틀, 다림질 받침대 등 기본이 30년이다.

“가위도 무뎌져요. 중간에 갈아줘야 하죠. 두 세 번 갈 삯으로 좋은 가위 하나를 살 수 있어요. 하지만 바꾸지 못해요. 처음부터 같이 했기에 제가 그만둘 때까지 같이 하고 싶어요. 제 손의 일부 같아요.”

세

월 속 함께한 인연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옛날만 해도 기성복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지금 미용실의 수만큼 의상실이 있었단다. 예복은 물론 일상복까지 맞춰 입던 시절이었다. 또 원도심은 상점 하나 얻기 어려울 정도로 번성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맞춤복보다는 기성복을 찾고, 원도심은 비어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포항에서 올라온 한 여성은 처음 옷을 맞추고 단골이 돼 1년에 여러 벌의 옷을 찾아간다. 또 외국에서 온 다문화이주여성이 친정을 방문할 때 친정어머니 드리라며 손에 꼭 쥐어준 옷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언니, 동생 하며 지낸다. 세월이 변했어도 영의상실엔 여전히 정이 남아있다.

“이 일을 그만둘 때까지”

40여 년을 의상실과 함께 했다. 가위와 재봉틀로 하루 종일 아옹다옹하니 손이 남아나질 않았다. 또 재봉틀을 종일 잡고 있을 때면 어깨와 무릎이 성치 못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바느질이 좋단다. 한 평생 옷감을 만지고 재단을 하고, 재봉틀과 함께 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가위가 닳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세월을 느끼곤 한다”며 “끝까지 그만둘 때까지 의상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당진시대가 시작하는 영상 사업인 <영상으로 만다는 당진 장인> 편과 함께 취재했습니다. 영상은 이후 당진시대 홈페이지 및 충남방송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