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행복을 재는 저울 바늘이 만족을 가리키는 경우는 지금껏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하면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다그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행복의 기준이 점차로 그 대상을 폭넓게 수용하며 향상되어 가고 있으니까. 행복이란 자기가 긋는 금이 최적선임을 분명하게 나는 말할 수 있다.
개인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옹고집을 없을 것이기에 사람들은 행복을 아주 없는 것으로 단정 지으려고 할 때가 많은지도 모른다. 조금 역설적이긴 해도 바로 없는 듯 한 것을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 있는 것으로 끌어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행복은 안개에 가린 듯 하면서 도처에 있는 존재이므로. 그래서 행복은 확실치 않으면서 가장 존중받는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다.
확실치 않다는 것은 주인이 없는 자연이다. 모든 인류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것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에게 행복은 기생하는 것이다. 남의 손으로 받으려고 하면 행복은 죽어버린다. 행복은 지나치게 예민하므로 인간의 손길로 행복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알아차린다. 성실한 마음과 따뜻한 배려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인내를 간파하는 것이다. 능력이 없음을 알 때 행복은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언제라도 바로 그 사람에게 다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지배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소심한 자의 그물에 결코 행복은 잡히지 않는 것이기에.
행복은 무엇인가. 아무리 물어도 행복은 불가변의 의미로 고정된 관념은 아닌 듯 싶다.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 구제의 휴머니즘의 일종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본능이므로. 행복을 얻고자 사람들은 불만을 줄인다. 욕망의 키를 줄이며 행복이 오래 내 안에 머물기를 희망한다. 바로 그 마음이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내 안에 있을 때 숨박꼭질하듯 숨어 있어서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때가 많고 이미 없어지고 나서는 지나간 자기의 존재를 추억처럼 기억하게 만든다. 이른바 심술꾸러긴 것이다.
그것을 정화하게 보는 것은 우리들의 눈이어야 한다. 우주는 생물체이고 물질이며 하나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라. 만물이 하나의 지각, 하나의 운명체며 그것은 하루하루 조금씩 소모되고 있으며 그 안에 나는 작은 미립자라고. 우주는 급속하게 변하고 지금의 배경을 일분 후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해 보라. 누구든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산다고 투정할 때라도 그것을 두 번 가질 수 없다고 할 때 귀중한 것임을 말 할 필요가 없겠다. 그 순간에는 절대로 다시 오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들까지도 지나고 나면 다정하고 친근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에 별반 부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매우 행복한 순간에 있다고 믿고 행복인가 아닌가 선별하려고 하지 말고 이 순간을 성실히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행복한가, 따지고 묻고 까다로움을 피우는 순간에 시간은 멀찌감치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유은희 씨는>
당진중앙성결교회 집사, 남원춘향제 방자상 수상, 춤남정신협회장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