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대하는 많은 현대인들은 역사를 매우 어려운 학문으로 인식한다. 역사의 시작은 제왕이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역사가 없던 시기, 어떤 경험도 없이 맞이하는 정치적 격변의 상황에서 제왕들에게 과거의 사례를 기록한 역사는 좋은 교과서이자 교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왕은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여 역사로 남겼고, 이는 후세에게 통치를 위한 경계로 삼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기록을 전문으로 하는 사관을 두었다. 사관으로 하여금 제왕의 업적을 기록하게 하고 제왕의 입장에 반하는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사관은 제왕의 입장에서 제왕을 위한 기록만을 역사로 남겼다.

동양 역사에서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마천도 집안이 대대로 사관 벼슬인 태사령을 지낸 전문 사관이었다.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의 대를 이어 사관이 되었다. 사마천은 태사령을 하면서 경험한 사실과 모아 둔 사료를 바탕으로 사기(史記)를 썼다. 사마천은 사기를 편찬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우고 고수하였다. 그것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원칙이다. 역사를 서술하면서 모든 사건을 기록하되 지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듯 사기 편찬은 역사가 제왕의 학문에서 벗어나 모든 인류의 학문이 된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제왕을 위한 기록만이 아닌 민초들의 삶까지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왕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초들의 입을 통해 제왕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보잘 것 없는 민초들의 삶일 수 있지만 사마천은 그런 민초들을 통해 제왕을 비판하였다. 이제 역사는 제왕을 위한 학문에서 제왕을 경계하는 학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