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
항쟁의 규모나 그 중요성에 비해 아직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대호지 4.4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지 한달여만에 대호지면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만세시위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고종황제의 인산에 참례하기 위해 상경했던 유생들이 3.1운동을 목격하고 우리고장에서도 독립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한 뒤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구해 귀향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곧 이인정면장을 비롯한 지방유지들을 규합하여 4월 4일 정미면 천의에서 5일장이 서는 것을 이용해 거사를 일으킬 것을 결의한다.
거사일인 4월 4일 대호지면 광장에는 6백여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태극기가 게양되고 독립선언문 낭독, 애국가 제창이 이어진 뒤 만세시위에 들어가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향하면서 시위군중은 1천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때 시위를 제지하기 위해 왜경이 출동해 시위대와 충돌하면서 평화적이던 만세시위는 곧 투석전등 폭력항쟁으로 돌변했고 일본순사를 무장해제 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4월 8일 정미면 수당리, 대호지면 송전리ㆍ조금리에서 제2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으로 3백여명이 구속되고 3명이 순국했으며 옥중에서 3명의 열사가 고문치사를 당했다. 구속된 열사들중 형을 받은 이는 15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호지 4.4운동은 주민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져 오다가 1980년대초 형사사건부와 재판기록등 문서가 뒤늦게 발견되면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현재 90여명의 열사가 독립유공자 훈포장을 추서받기에 이르렀다.
대호지 4.4독립운동은 비록 유생과 유지들이 주동했으나 민중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바탕이 돼 전개된 항일운동이다. 또 행정기관과의 연계도 4.4운동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