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미면 천의삼거리에 설치된 남상락 자수 태극기 비석.
▲ 정미면 천의삼거리에 설치된 남상락 자수 태극기 비석.

정미면 천의리 천의삼거리에 ‘남상락 자수 태극기’를 상징하는 비석이 지난해 12월 세워졌다. 그러나 현재 태극기와 남상락 자수 태극기의 사괘(건곤감리) 위치가 달라 일부 주민들이 ‘태극기가 잘못 그려졌다’며 혼돈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는 1919년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당진에서 4·4독립만세운동 때 사용한 태극기로, 그의 부인 구홍원이 직접 수를 놓아 만들었다. 크기는 가로 44cm, 세로 34cm로, 흰색 명주 천에 색실로 수를 놓았다. 직접 짠 명주에 손바느질로 제작한 희귀한 태극기로, 사료로서 가치가 커 등록문화재 제386호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천안 독립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대호지면에서 4·4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된 남상락은 아내가 만들어 준 자수 태극기를 시위 때 사용하고, 평생 고이 간직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지난 1986년 10월 그의 아들 남선우가 천안 독립기념관에 태극기를 기증했다.

한편 남상락 자수 태극기의 사괘(건곤감리)가 현재 사용하는 태극기와 위치가 다른 것은 1883년 고종 때 태극기가 국기로 제정됐지만 당시 구체적인 국기 제작 방법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통일된 규격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탓에 태극기가 서로 다른 형태로 제작돼 온 것이다.

실제로 남상락 자수 태극이 이외에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건국법정대학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등은 모두 사괘의 위치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회오리 모양의 태극문양, 세로로 감싸고 있는 태극 등 제각각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태극기를 연구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당시에는 흰 바탕의 가운데에 적색과 청색의 태극문양이 있고 네 귀퉁이에 건곤감리의 사괘가 있다는 원칙 정도만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처럼 태극기가 규격화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15일 대한민국의 정식 국기로 공표된 뒤다.

한편 남상락 자수 태극기와 관련된 내용은 비석 뒷면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