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보는 우리 역사]

금주의 당진역사(唐津歷史)

5월 첫째주(4월 29일~5월 5일)

◆29일 : 합덕방죽 관리부서회의

충남 당진군 합덕면 연제 유지계(蓮提溜池?)에서는 4월29일에 본계 사무소내에서 제11회 정기총회를 계장 최한영(崔翰榮)씨의 사회로 개최하고 본 년도 사업진행 방침에 대한 간단한 협의를 한 후 폐회하였다는데 신임원의 씨명은 다음과 같다. 계장(?長):김종훈(金鍾勳), 총무(總務):손영호(孫永昊), 간사(幹事):이문우(李文雨)씨 등. (동아일보 1926년 5월6일)

◆1일 : 갑작스런 우박과 화재

경기도 광주(廣州)·여주(驪州)·금천(衿川)·지평(砥平), 전라도 순창(淳昌)·부안(扶安)·고창(高敞)·진원(珍原)·정읍(井邑)·함평(咸平)·여산(礪山)·고산(高山)·태인(泰仁), 경상도 고령(高靈), 충청도 홍주(洪州)·은진(恩津)·남포(藍浦)·연기(燕岐)·면천(沔川)·목천(木川)·회덕(懷德)·직산(稷山)에 우박이 내렸다. 또 직산의 산골짝에서는 갑자기 근거 없는 불이 나서 약 반나절 갈이의 땅에 있는 초목(草木)을 모두 태웠고, 온양군(溫陽郡)에서는 백성 세 사람이 벼락맞아 죽었다. (중종 30년 5월1일(음))

◆1일 : 합덕 양조주식회사 창립

충남 합덕 범천에 있는 합덕(合德), 대동(大東), 성원(成元) 세 양조장은 기술향상, 업무진전을 목표로 합동하여 공칭 자금 135,000원으로 합덕양조주식회사(合德釀造株式會社)를 창립하고 지난 5월 1일부터 업무를 개시하였다는데 역원(役員)은 아래와 같다 한다. 사장:박한규(朴漢奎). (동아일보 1938년 5월7일)

◆2일 : 석문면 삼봉리에 큰 탄광

충남 당진군 석문면 삼봉리에서 작년에 약 백만평의 큰 탄광이 있음을 경성부 당주동에 사는 이영우(李永雨)씨가 발견하고 그 후 전기 주소에 사는 이인상(李仁相)씨와 협력하여 총독부에 출원하였는 바 그것이 동 12월7일부로 허가가 되어 모든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지난 12일 경부터 발굴하기 시작하였다는 바 그동안 일주일간 채탄한 것이 3인 인부에 대하여 매일 □□평균이라는 바 현재 시작한 광맥이 8회 가량이라는 데 그 탄질을 사용하여 본 결과 평양탄에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 분량으로 말하면 144만톤 가량이라고 추측된다하며 그 채굴을 맞추기까지는 일일 300톤을 파낸다하더라도 80년이나 걸리리라는 바 앞으로 주식회사로 정명할 계획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1931년 5월2일)

◆3일 : 면천 아미광산 광부 3명 시상

충남 면천 아미광산에서는 지난 27일 오후 10시 동광산 굴에서 5명의 광부가 작업하다가 『다이나마이트』가 돌연 폭발하여 3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조선일보 1938년 5월3일).

◆3일 : 당진 최고봉 아미산에 금광이 있었다

당진군의 광업은 지질구조상 다양한 광물이 존재하지 않고 그 규모도 대단히 영세하다. 광산의 위치도 당진읍, 송악면, 석문면에 집중되어 있고 우강, 합덕 쪽에는 평야지로 광산물의 생산이 거의 없다. 현재에 가동중인 업체는 석회등으로 약 9개업체가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특이한 것은 당진의 최고봉인 아미산에 금광이 있었다는 점이다. 1910년경 한상열이 개광하여 금을 생산하였는데 일제시대를 보내며 일본인들에게 넘어가 운영되었다. 해방기에 이르러 김광준, 이문영등이 경영하였으나 채산성이 부족하여 1960년대에 이르러 완전 폐광되었다고 한다. 생산물로는 금을 중심으로 약간의 은, 동, 아연 등이 채굴되었는데 잘 운영될 때에는 인부도 200여명이나 되었다. 당진에서는 최초로 전기를 이용하여 채굴을 하였다고 하며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광물을 운반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남아있지 않고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당진군지 참고)

자료조사·글 : 김남석(nsk6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