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론으로 촬영한 면천면 성상1리
▲ 드론으로 촬영한 면천면 성상1리

<편집자주>

오랜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있는 보호수와 누구도 찾지 않는 열녀문, 그리고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들이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지도 모르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본지에서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취재를 통해 기사와 영상으로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됩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면천면 성상1리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면천읍성,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고 시를 읊었던 군자정, 면천두견주로 만들었던 안샘, 1100년 전 복지겸 장군의 딸 영랑아씨가 심은 은행나무 등이 자리한 마을이다.

현재 면천면에는 1800세대 40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성상1리에는 약 341세대 673명이 거주하고 있다. 500년 전 면천이 현이었을 때는 3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면천면지에 따르면 성상1리는 면천읍성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성상(城上)리 라고 불렸다. 성상리는 성안과 남문밖, 장마루, 향교말, 동문밖, 북문밖, 서문밖, 가자거리, 배양골, 성뒤골, 송림돌, 잣골, 장촌골 등으로 불리던 자연마을이 있었다. 이중 성안은 성상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면천읍성 안쪽이다. 읍내 또는 시내라고도 불렸다. 가자거리는 조선시대 때 장이 섰던 마을이었고, 잣골은 몽산성의 성안마을이었다. 면천면 성상1리에서 나고 자란 주민 황장성 씨는 “장촌으로 불리기도 했던 장마루는 순성면에 마구마을이었던 ‘역말’로 가는 길이었다”며 “장촌 넘어서는 무신들이 모여 사는 당골이 있었다”고 전했다.

▲ 면천읍성의 모습
▲ 면천읍성의 모습

외적 침입 막기위해 쌓은 읍성

면천읍성은 조선 초기 지방행정구역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1439년(세종 21년) 2월에 축성해 같은해 11월 완성한 성이다. 서산의 해미읍성보다도 먼저 건립된 곳으로, 행정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성내에 관아와 객사, 내아를 비롯한 건물 등이 있었다. 조선 후기 읍성 기능을 상실한 후 민가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저자(시장)가 생겼으며, 1872년에는 면천읍성의 문루 등의 시설이 무너지고 퇴락해 모두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1993년에는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됐으며 2007년부터는 면천읍성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면천읍성이 축조되기 전에는 면천의 방어거점은 산성이었다. 지금의 면천읍성 북쪽에 위치한 몽산의 정상부에 위치한 것이 바로 몽산성이다. 산성은 축조가 쉽고 방어하기 적합하지만 사람들이 오고 가기 불편해 생활에 제약이 많아 평지에 읍성을 지었다고 알려졌다.

▲ 두 그루의 면천은행나무 수령은 약 1100년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나무는 복지겸장군의 딸 영랑아씨가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 두 그루의 면천은행나무 수령은 약 1100년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나무는 복지겸장군의 딸 영랑아씨가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영랑아씨가 심은 은행나무 두그루

면천읍성만큼 유명한 게 면천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51호)다. 면천은행나무는 무려 수령이 1100년이나 됐다. 조만형 노인회장은 “고려의 개국 공신이었던 복지겸 장군의 딸 영랑아씨가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은행나무를 보존하고자 면천면민들이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 안샘
▲ 안샘

은행나무 옆에는 안샘도 자리하고 있다. 은행나무와 안샘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있다. 복지겸 장군이 병이 들어 위독할 때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신선이 아미산에 핀 진달래꽃과 안샘의 물로 백일주를 담가 아버지에게 드리고 뜰에 은행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영랑이 신선의 말대로 했더니 복지겸 장군의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롯된 면천두견주는 지난 2018년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사용돼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2일과 7일에 섰던 장

한편 면천에서 크나큰 장이 서기도 했다. 면천읍성 안에 2일과 7일에 서는 오일장이 자리했단다. 이권배 이장은 “우리가 어릴 때만해도 장이 엄청 컸다”며 “옛날에는 약장수들이 북과 장구를 치면서 약을 홍보했는데 그걸 재밌게 봤다”고 회상했다. 또한 “특히 서산, 군산 등에서 가져온 나무를 판매하는 나무시장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주민 황장성 씨 역시 “군산, 서천, 홍성 사람들이 지게에 나무를 메고 면천읍성에서 나무를 팔곤 했다”며 “배에 나무를 실어 인천과 서울로 운반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 1970년대 풍락루앞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의 모습
▲ 1970년대 풍락루앞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의 모습

면천읍성 안에 큰 장이 열렸던 만큼 성상1리 주민들은 대부분 상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점점 사람들이 떠나며 빈 가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최근 면천면이 점점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면천에 미술관과 책방, 소품샵, 카페 등이 하나 둘 생기면서 관광객들이 많아졌다”며 “최근에는 면천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겠다는 문의도 들어왔다”고 전했다. 이권배 이장은 “옛날에는 면천이 쇠퇴했다고 푸념만 했는데 요즘에는 면천에 활력이 생기면서 희망을 가지게 됐다”며 “이제는 당진시의 대표적인 명소가 면천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고 있는 만큼 성상1리 주민들이 지역을 깨끗하게 하는데 더욱 노력해줬으면 합니다. 성상1리가 변해야 면천면이 변화합니다.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에 함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