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행송악면 방계리

애국자를 역사에 묻어둔 채 배우지 못하는 우리들

좥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한다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듯 하거든 드는 칼로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좦

송악면 부곡리 심훈선생 본가 필경사(筆耕士)에 서 있는 시비다.

해방의 그날도 보지 못한 채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애국자요, 언론인으로 일제에 몸과 붓으로 항거한 비장한 기개와 고결한 문화예술혼을 간직한 상록수의 심훈선생.

일제를 칭송하는 글이나 그림을 남기고 학도지원병을 독려한 자들, 밀정이나 고등계 형사로 악명을 떨쳤던 자들이 해방이후 버젓이 지도층으로 둔갑했던 세월. 국내에서 또는 만주벌판을 떠돌며 일제에 항쟁했던 수많은 선각자 가운데 후세에 이름이나마 남기고 존경받고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한 건국사업 초기의 잘못 끼워진 첫단추. 쉽사리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서야 되겠는가.

3월1일 3.1절 기념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세차게 부는 선거바람탓에 인간생활의 영역 중에서 그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치이건만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매체들은 하나같이 정치판만을 무제한적으로 과다하게 다루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즘 언론의 모습을 보면 모두 한 공장에서 생산되어진 개성도 없고 모양도 비슷한 상업물류전단지 같은 양태의 메신저 같으니 말이다. 물론 4월의 선거나 정당정치가 중요하지 않은건 아니나 과거는 오늘의 어머니인 것이다.

해방후 반민특위를 무력하게 하여 민족정기를 흐리게 한 자들, 장기집권을 부추겨 개인의 영달에 혈안이 됐던 자, 쿠테타의 부당함에 항거하여 역사를 바로 하려했던 의인들, 삼선개헌 당시 그 부당함을 진언하다 초야에 묻혀있고 용기와 신념으로 일관된 현·근대사의 의리와 지조, 절개를 목숨처럼 간직했던 선구자들의 흔적을 재조명하여 현정치판의 반면교사로 현명한 판단과 선택의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에 충실해 주었으면 한다. 그간 지역주의, 편가르기, 변질과 부도덕의 허물이 덮어진 것은 언론문화의 책임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프랑스도 나치점령시 비시정권의 수상으로 극단적인 친독정책을 펼쳤던 라발은 비침한 최후를 맞았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음독자살까지 기도했으나 혼수상태로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한다. 당시 드골은 나치협력자 3만8천명을 중형에 처하고, 4만8천명의 공직자를 추방했다 한다. 특히 특이할만한 것은 언론인을 비롯한 문필가에게 더욱 가혹했다는 점이다. 매국에는 칼보다 펜의 해독이 더 크다고 인식했던 것 같다.

이 나라는 영원히 민족의 것이지 무슨 무슨 주의나 정당의 소유가 아닌즉, 농촌에 일손이 부족할 정도의 단합대회니 단결이니 과열로 부추키지 않도록 사회의 공기요, 목탁인 언론은 눈을 크게 뜨기 바란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당진의 역사를 선생은 저승에서도 기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