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째 주 당진역사

3일 ■석문보교사건(石門普校事件), 전부 면소(免訴)

충남 당진군 석문면 공보교에서 금년 1월 18일에 만세를 부르자는 선전물을 4∼5학년 책상 서랍 속에 넣은 것이 미연에 발각되어 그 학교 훈도 인운식(印雲植)씨와 당지 신간지회 간부인 고일, 이완수, 임종만, 이충범, 정형택, 정유석, 인장식등 제씨가 선동의 혐의로 당지 경찰에게 검거되어 엄중한 취조를 받는다 함은 당시 보도한 바어니와 그 후 고일, 인완수, 임종만, 인운식등 네 사람만은 송국되고 기타는 모두 석방되었던 바 송국된 전기 4씨는 즉시 예심에 회부된 이래 8일이란 긴 세월을 홍성 예심감에서 고초를 받던 중 인운식만은 그동안 병으로 보석되었으며 나머지 3씨는 지난 25일 예심 종결로 그곳 동지들의 출영리에 출감되어 그 익일에 바로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된 바 그 당일에도 당지 다수 친지의 출영이 있었다 한다.

(조선일보 1930년 9월 3일).

4일 ■남천제방(南川堤防) 붕괴로

당진에 또 침수

지난 4일 오전 5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가 동 10시경에 당진읍내앞 남천제방이 무너져서 우시장(牛市場)이 지난 홍수에 형체가 없던 것을 다시 수축한 것과 시가지 가옥 등이 재차 침수되어 당지 시민들은 지난 홍수에 침수되었던 주택지의 파손물이 수선도 다 못되자 또 지난 비와 같이 침수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에 소방대 관공리들의 총출동으로 방비에 전력한 결과 겨우 심히 위험한 경우만은 면하였으나 아직까지도 비는 개이지 않고 여전 하늘은 음음함으로 그곳 시민들은 전전긍긍한다 하며 손해에 있어서는 상당한 숫자를 나타내리라는 바 아직은 자세히 알 수 없다 하며 전답에는 다대한 손실이 있으리라고 한다.

(조선일보 1930년 9월 9일)

8일 ■당진피해 심대(甚大)

충남 당진지방에는 9월 8일 오전 1시경에 폭풍과 대뢰(大雷)가 있었고 동월 10일 오전 2시경부터는 폭우가 퍼부었는데 충재(蟲災), 뇌재(雷災), 수재(水災), 풍재(風災) 등 천재로 근래 희유한 풍작이 든 바 막대한 피해가 있었다는데 고대 등지와 신평면 일대는 6할 이상의 피해가 있다하며 당지 군청조사에 의하면 금액 4만 5천여원, 파괴면적 1천3백7십 정보라 하더라.

(동아일보 1926년 9월 19일)

자료조사 : 김남석(nsk6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