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혁명
21세기를 NGO의 시대라고들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시민단체가 새로운 형태의 활동과 힘의 결집으로 세력화함은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제 시민단체는 세계적으로 제도권의 절대권력화를 막는 견제의 세력으로 대두한다는 의미이다.
근래에 시민단체에서는 4.13 총선에서 국회의원 낙천·낙선운동을 하겠다고 해 정치권과의 미묘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의 의미는 이제까지 부족한 결집력과 모자라는 힘으로 인해 평범한 시민들의 불만 정도를 해소해주던 시민단체의 활동에서 절대권력처럼 군림하는 정치권의 개혁을 위해 정면에 나서는 것으로 기대해 볼 만하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우리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어느날 하루 아침에 주어진 것이어서 어떻게 본다면 국민들에게 절실하지도, 준비되어 있지도 못했다. 절대권력의 통솔에 따라 움직이던 수동적 형태에서 별안간 주어지다 보니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있다.
이러한 정도의 민주주의 민도를 이용해 군인들과 야합한 정치인들이 군사정권에서는 허울좋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정치를 시작했고 40여년간을 능률적이라는 논리를 앞세워서 국민들의 권리를 제한해 왔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통제하고 획일화시키며 일부 집권자, 운영자들의 편의에 따라 운영하는 것을 효율로 알고 있는 것은 정치권은 말할 것 없고 주권자인 국민의 다수도 당연시하고 그 폐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것을 깨달은 것이 다행일 뿐만 아니라 그 시기가 무르익어서 긴세월 동안 부패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원리적인 정치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정치권에서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민주주의적 혁명인 것이다.
국민에게는 민주주의 원칙에 국민청원권, 국민투표권, 국민소환권이라 하여 대의정치에서도 국민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우리나라의 건국 초기 헌법에는 절대적으로 강조되었던 부분들인데 어느 틈엔가 제한되고 상징적으로만 존재할 뿐 우민화 정책을 통해 정치인들의 입맛대로 통제되어버린 현실을 그들은 이해하고 깨닫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왜 이렇게 국민이 나서도록 되었는가와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작금의 정치권의 반발은 누리고 있던 자들의 잃지 않으려는 욕심이 안간힘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누려야 할 국민이 찾으려는 현실에서는 저항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윤리·도덕적 근원에서 접근은 차제하고라도 상식선에서 바라본다 하여도 지금의 시민단체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정치권의 반발은 국민의 권리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심하게 말하면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파렴치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잘못을 단지 정치권에게만 미루고 집권자에게만 떠넘길 것인가를 국민인 우리도 곰곰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과연 어떻게 하였는가.
우리 스스로 선거의 추잡한 모습을 만들어 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초기의 고무신, 막걸리에서부터 시작해 돈봉투, 사업상 이권개입 등으로 발전해오면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 왔는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권과 공직사회의 비리, 도덕적 타락, 그리고 부패는 우리 스스로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말자. 이 점을 우리는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근래의 시민운동은 무력이 동원되지 않은 시민혁명이다. 혁명은 그 후속조치가 완벽하게 이어지고 처리되어야 성공하는 것이다. 그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원리원칙과 청렴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요구하는 정치적 개혁은 곧 사회의 개혁으로 이어져 나가서 국민의 정신적 성숙을 이룩하는 범국민적 정신운동으로 이어져 나가야 한다.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 시민운동이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작은 범주에서 머물지 말고 소외계층이 없고 무단과 횡포가 없으며 독선과 아첨이 없는 진정한 국민적 정신혁명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들의 시민단체도 투쟁의 의미에서보다 시민의 제도의 뜻에서 더 큰 의미를 주기 원한다.
힘없고 소외당하는 소시민인 나 또한 이 혁명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