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9 · 문화·교육 · 임아연
“남부권, 농산물 브랜드화 및 관광 활성화 해야”
…게 힘이 있다면 지역주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고향 발전에 보탬이 되고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가장 중요한 지역의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부권은 특히 인구 유출이 많아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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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건 · '고향 행복' · 문화·교육 · 2021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21.10.09 · 문화·교육 · 임아연
…게 힘이 있다면 지역주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고향 발전에 보탬이 되고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가장 중요한 지역의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부권은 특히 인구 유출이 많아 농촌…
2021.08.29 · 문화·교육 · 박경미
… 대표는 경기도 구리시에서 20년간 살다가 남편 퇴직 후 6년 전 다시 고향을 찾았다. 그동안 개인 식당을 운영키도 하고 병원 등에서 조리사로 일했던 이 대표는 경험과 손맛을 살려 이여사메기매운탕을 차렸다. 그는 “집에서 가만히 쉬는 성격이 못 된다”…
2021.08.21 · 문화·교육 · 박경미
…씨는 “고단했던 삶을 노래로 잊을 수 있었다”면서 “노래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무명가수로 노래만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건 힘들었기에 KT 본사에 입사해 일했다. 마케팅전략실장까지 하면서 연봉이 1억 원을 넘길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2021.07.12 · 문화·교육 · 김예나
…서 계림약국을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당시 아버지의 고향인 당진을 찾으면서 약국을 문 열었다. 어릴 적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그는 “부모님은 독서를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레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늘 집에 여러 책을 놓아두셨다”며 “시,…
2021.06.19 · 문화·교육 · 한수미
… 과거를 떠올렸다. 원산에서 일을 마친 아버지와 함께 인천을 거쳐 다시 고향 당진에 왔다. 우강초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단다. 하지만 글방을 운영하던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마친 그에게 배움의 기회를 더이상 주지 않았다. 대신 할아버지에…
2021.06.11 · 문화·교육 · 임아연
이재교(정미면 봉성리·54) 씨가 태어난 고향집이,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나고 있다. 폐허로 남아 있던 옛 고택이 다시 살아나고, 푸릇푸릇 새로운 생명들이 고향집을 둘러싼 대지에서 자라난다. 옛날 동네 아낙들이 모여 빨래를 했던 샘터는 아름다운 연못을 …
2021.06.07 · 문화·교육 · 박경미
… 되면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는 야간수업을 들었는데 이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제자 덕분에 힘 얻어” 인천에서 10년간 사범 생활을 하다 김 관장은 11년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결혼해 당진에서 가정을 꾸렸는데 도복을 입고 길을 …
2021.04.19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이 뿌옇게 밝아오자 아들은 파출소에 가서 아버지의 가출 신고를 하였다. 고향의 이장 어른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술 한 잔에 애잔한 마음을 달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아버지…
2021.04.19 · 문화·교육 · 김예나
…동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고. 배우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사가 됐다는 그는 고향 보령에서 웅천사진관을 5~6년 동안 운영했다. 합덕으로 이사온 그는 당시 예술사진관에서 사진기사로 근무하다 1970년대 초 지금의 자리에 세를 얻어 동생 이정구 씨와 형제사진…
2021.01.13 · 문화·교육 · 박경미
…없다는 것에 설움이 많았다”며 “먹고 살기 바빠 학교는 생각도 못하다가 고향 당진에 내려와 해나루시민학교를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내 평생 한번도 ‘선생님’이란 단어를 불러보지 못했다”며 “‘선생님’이란 호칭이 좋아 문제를 알아도, 몰라도 선생님을…
2021.01.11 · 문화·교육 · 박경미
…없다는 것에 설움이 많았다”며 “먹고 살기 바빠 학교는 생각도 못하다가 고향 당진에 내려와 해나루시민학교를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내 평생 한번도 ‘선생님’이란 단어를 불러보지 못했다”며 “‘선생님’이란 호칭이 좋아 문제를 알아도, 몰라도 선생님을…
2021.01.04 · 문화·교육 · 한수미
… 줄만 알았던 나였지만,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 중국에서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하고 잘 맞았다. (중략) 결혼 후 남편이 사는 당진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당진이란 곳은 남편 말고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아이와 집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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