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2.0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장애인 일일찻집장소 무료제공 - 양지다방 배인숙씨
…문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경로당이나 봉사단체에 꼬박꼬박 찾아갈 정도로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가져왔던 그에게는 이미 결론이 나있는 고민거리였다. ꡒ결정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행사 당일날 모두들 한잔이라도 더 팔려고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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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건 · '어려운 고향' · 1994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994.12.0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문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경로당이나 봉사단체에 꼬박꼬박 찾아갈 정도로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가져왔던 그에게는 이미 결론이 나있는 고민거리였다. ꡒ결정을 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행사 당일날 모두들 한잔이라도 더 팔려고 잠시도 자리에 앉아 있지 …
1994.11.28 · 정책·행정 · 최종길 기자
… 그중 자신의 노력으로 행정쇄신위원회 산하에 「고충처리위원회」를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는 감사원장 자문기관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 인목사는 그동안 숙원해오던 …
1994.11.07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느낌과 같은 거죠” 순성이 고향인 유석원씨는 26년전 합덕으로 나오면서부터 의용소방대 활동을 시작했다. ‘가진것 없으니 몸으로라도 봉사해야겠다’는 것이 당시 그가 의용소방대를 들어간 이유였다. 대장직을 맡은…
1994.10.1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토가 있는 농가는 그중 양반계급에 속했던 시절이다. 이경수씨가 두살 때 고향 옹진에서 아버지 등에 업혀 전쟁을 피해 나온 곳이 뭍에서 지척으로 건너다 보이는 연평섬. 그 당시 그곳 주민들은 한달 이내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간단하게 꾸린 …
1994.09.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텁게 하는 명절이다. 그래서 사방팔방 흩어져 살던 식구들이 어른이 계신 고향으로 모여드니 그립던 사람과 만나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하면서 삶의 보람과 행복함과 평화를 만끽하는 날이기도 한것이다. 우리는…
1994.07.1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궈낸 제 2의 대명. 그동안 필름생산에 종사하며 얻은 18년간의 경륜과 고향 농민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지역민들의 요구가 부합돼 지난 93년부터 이곳 신평농공단지안에서 공장신축에 들어가게 됐다. 송산면 부곡리가 고향인 전대표는 당진상고 총동창회장을 …
1994.06.27 · 문화·교육 · 당진시대
…무과에서 일하면서 한문과 선생으로 8년동안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그후에는 고향 대치리로 돌아와 농사일을 돌보고 땅을 지키면서 아들에게 또 그아들에게 물려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홍사영씨는 70여년의 생활을 농촌의 밭과 산골의 오솔길을 걸어가면서 그길을…
1994.06.20 · 정책·행정 · 당진시대
… 물론이려니와 어떤식으로든지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하고, 그들의 체험중에 어려운 사항은 함께 나누고, 함께 겪으면서 그들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야 공직자의 올바른 사명이며, 자세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모든 농민들이 고루 잘 살도록 하는 지름길…
1994.05.2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하다고 농담도 한마디 곁들이는 할아버지는 연신 싱글벙글이다. 김산옥씨의 고향은 경기도 양평이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로 죽을 고비와 애절한 경험을 맛보지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김산옥씨도 고통과 고통으로 뼈를 깎는 아픔을 어린나이에 온몸에 안…
1994.03.21 · 지역사회 · 당진시대
…구 그러는지” 하면서 조상들의 묘 탓이라고 혀를 차신다. 김동옥할머니의 고향은 충북 진천의 산골 마을이다. 17세 어린나이에 떠돌이 김삼문씨와 결혼하여 여기저기 옮겨다니면서 품팔이로 겨우 생활을 했다. 남의 집살이가 고달파 20여년전 영감님의 고향인 …
1994.03.0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전 죽을 목숨인데 다시 살아났지요. 그때는 다시 태어났으니 죽는 날까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져 마음 속으로 몇십번 다짐을 했었는데 이렇게 병신이 되었으니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의 신세만 지고 살게 됐어요. 정말 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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