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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유제 덕산군’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4건
기간
1993—2026

4건 · '유제 덕산군'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 2020.11.28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당진의 유제 군수 이야기 13관청 박해로 피해 입은 교회공동체

    …일 홍주에 당도하였다. 덕산 수촌에 사는 조원식은 관예에게 구타 당하며 덕산군수 조종서에게 끌려가 문초를 당했는데 조원식은 덕산군수에게 “본 군수 도종서를 보고 무슨 죄로 잡아온 곡절을 무르니 군수의 말이 그대의 무죄함은 내가 이미 염탐하여 자세히 아…

    당진시대
  2. 2020.10.31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당진의 유제 군수 이야기 12 고난을 이겨낸 증인의 삶

    유제는 면천군수직을 마친 후부터 모함과 핍박을 받았다. 1897년 1월 5일 기록에는 “전 면천군수 유제가 ‘범포 육천이백십육냥과 이포가 오천일백냥’이 되어 당진군수 박용덕 씨로 별정 사관하여 사해한다 하엿더라”고 쓰여있어 부정부패한 관리로서 평가하고…

    당진시대
  3. 2020.10.24 · 정책·행정 · 김예나

    당진의 유제 군수 이야기 11 덕산군 한내에 거주하며 교회 세워

    유제는 면천군수 면직을 당한 후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면천군과 인접해 있는 덕산, 고덕에서 거주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가 거주한 덕산군 한내(대천리)는 서울로 곡물을 실어나르던 내포 교통 문화의 중심지인 구만리 포구와 가까운 곳으로 해로를 이용해서 서…

    당진시대
  4. 2020.09.28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당진의 유제 군수 이야기 8]신앙과 생활이 일치된 신앙인

    유제의 선행은 조선그리스인회보와 독립신문에서도 기사화 되었다. 그가 덕산 한내에서 복음을 전할 때 덕산군수 도종서가 오해하여 “부자의 곡식을 빼앗고 억지로 행악한다”는 이유로 홍주 병참소에서 잘못된 도당으로 일행들에게 체포령을 내렸었다. 이에 대해 해…

    당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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