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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환-석문면 교로리] 굶주렸지만 교회일 열심이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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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환-석문면 교로리] 굶주렸지만 교회일 열심이었던 시절

석문면 교로리 · 2005년 10월 당진시대 게재

나의 어머니 백채운 권사는 삼봉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어머니는 주일날 예배만 마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 역시 어려서부터 성가대도 하고  커서는 주일학교 교사도 하는 등 교회활동에 열심이었다.

#1

첫번째 사진은 삼봉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할 당시였던 1965년도 여름. 배미산(현 아미산)에서 열렸던 당진지방 산상집회 기념사진이다. 당진지역의 감리교인들이 모이는 집회였는데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음에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배미산이 언제부터 아미산으로 불리웠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아미산은 그리 오래된 이름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2

두번째 사진은 면천중학교 졸업사진이다. 사진뒤에 보이는 건물이 2층짜리 목조건물이었던 당시의 면천중 교사다. 건물이 낡아 기우는 바람에 버팀목을 해놓았던 기억이 난다. 일제시대 때 누에고치 판매장이었던 시설을 학교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엔 당진에 있는 중학교보다 면천중학교를 더 알아줬었다. 당진아이들은 물론 고덕, 서산, 운산 쪽 아이들도 면천중학교로 왔다. 나는 석문에서 면천까지 통학을 할 수가 없어 학교 앞에 방을 얻어 자취를 했었다. 학교엔 농사기술을 배우기 위한 실습지가 있었는데 고추, 무 같은 밭작물 재배법을 비롯 양봉기술도 배웠었다.

이때는 자유당 시절로 말 그대로 법보다는 주먹이 먼저인 시절이었다. 패싸움을 벌이는 게 일이었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학창생활의 목표였다. 나도 이른바 ‘한가닥’했는데 주먹도 주먹이었지만 배구, 기계체조,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후에 석문면 씨름대장을 15년동안 보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우리들의 대장은 밝혀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전 부군수였던 인치승 선배였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유재천 전 수협조합장, 전 어촌계장 조지행 선배도 모두 면천중 출신이다.

#3

세번째 사진은 장고항 노적봉에서 성가대장이었던 손욱승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야외예배를 보러가서 찍은 사진으로 기억한다.

※김순환(68)씨는 예비군 석문소대장, 새마을지도자 1기생, 교로1리장을 역임했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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