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백채운 권사는 삼봉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어머니는 주일날 예배만 마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 역시 어려서부터 성가대도 하고  커서는 주일학교 교사도 하는 등 교회활동에 열심이었다.

첫번째 사진은 삼봉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할 당시였던 1965년도 여름. 배미산(현 아미산)에서 열렸던 당진지방 산상집회 기념사진이다. 당진지역의 감리교인들이 모이는 집회였는데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음에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배미산이 언제부터 아미산으로 불리웠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아미산은 그리 오래된 이름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두번째 사진은 면천중학교 졸업사진이다. 사진뒤에 보이는 건물이 2층짜리 목조건물이었던 당시의 면천중 교사다. 건물이 낡아 기우는 바람에 버팀목을 해놓았던 기억이 난다. 일제시대 때 누에고치 판매장이었던 시설을 학교로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엔 당진에 있는 중학교보다 면천중학교를 더 알아줬었다. 당진아이들은 물론 고덕, 서산, 운산 쪽 아이들도 면천중학교로 왔다. 나는 석문에서 면천까지 통학을 할 수가 없어 학교 앞에 방을 얻어 자취를 했었다. 학교엔 농사기술을 배우기 위한 실습지가 있었는데 고추, 무 같은 밭작물 재배법을 비롯 양봉기술도 배웠었다.

이때는 자유당 시절로 말 그대로 법보다는 주먹이 먼저인 시절이었다. 패싸움을 벌이는 게 일이었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학창생활의 목표였다. 나도 이른바 ‘한가닥’했는데 주먹도 주먹이었지만 배구, 기계체조,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후에 석문면 씨름대장을 15년동안 보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시 우리들의 대장은 밝혀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전 부군수였던 인치승 선배였다.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유재천 전 수협조합장, 전 어촌계장 조지행 선배도 모두 면천중 출신이다.

세번째 사진은 장고항 노적봉에서 성가대장이었던 손욱승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야외예배를 보러가서 찍은 사진으로 기억한다.

※김순환(68)씨는 예비군 석문소대장, 새마을지도자 1기생, 교로1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