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 추억의 앨범

테마 마을과 이웃「마을과 이웃」 테마 책 →

‘미미사’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미미사’

[1950년대, 계성초 주변모습] 밤절고개와 대차골, 그리고

2006년 5월 당진시대 게재

1958년도 계성초등학교 주변 모습이다.

#1

첫번째 사진은 택지개발로 사라진 구 보건소 자리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주변의 초가집들이 인상적이다. 학교와 이 초가집들 사이엔 울타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 집앞 마당의 버찌, 보리수수가 남아나질 않았었다. 초가집 옆으로 작은 판자집 한 채가 보이는데 ‘미미사’로 불리던 문방구점으로 기억된다. 연필과 공책, 군것질 거리를 팔던 곳이었다. 사진 속엔 없지만 ‘처녀누나’가 운영하던 아주 작은 문방구점이 한 곳 더 있었다. 초가집 뒤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은 밤절고개로 현재 농촌공사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원래 이 터는 공동묘지자리였다. 그래서 건물을 지을 때 6.25당시에 집단학살당한 유골들이 많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성학교가 자리잡은 동네는 대차골로 불렸었다. 닭의 우리처럼 생겼다하여 ‘닭책골’이었던 것이 ‘대차골’로 바뀐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

두 번째 사진은 역시 같은 시기 첫 번째 사진과 정반대편에서 찍은 운동회 장면이다. 정면에 보이는 산이 구보건소가 있던 산으로 꽤 울창한 산림이었다. 자유당시절이었던 그때, 시도때도 없이 방공훈련을 벌여 싸이렌이 울리면 수업을 하다가도 이 산에 있던 방공호로 대피하곤 했다. 봄 가을이면 깡통을 들고 이 산에 올라가 나무젓가락으로 송충이를 잡았던 기억이 난다.

이때 운동회는 동네 체육대회나 마찬가지였다. 이날만큼은 읍내의 국밥집, 막걸리집들도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장사를 했었다.

전쟁끝이라 경쟁의식이 강해 한번 대항이 벌어지면 살벌할 정도로 치열했다. 아이들도 패싸움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계성학구와 당진학구로 갈리어 논두렁을 사이에 두고 맨날 싸움을 벌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계성초등학교 아이들은 이때 당시에도 축구를 잘해 각 학교 운동회에 원정가 그 학교의 기를 빼앗아 오곤 했다. 그래서 교장실엔 다른 학교의 기가 전리품처럼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곤 했다. 그때는 학교마다 운동회날이 달라 운동회가 있는 학교에 원정을 가서 학교대항 경기가 벌어지곤 했다. 바야흐로 50년대는 대결의 시대였다.

사진설명: 김양중(당진읍 대덕리. 계성초 6회, 6대 총동문회장 역임)

사진 : 계성초 동문록 ‘계성인’ 제 3호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