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 추억의 앨범

테마 학창 시절「그 시절 우리 학교」 테마 책 →

"당진보통학교에 입학하던 날"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당진보통학교에 입학하던 날"

이재룡 전 당진향교 전교

2006년 5월 당진시대 게재

내가 학교에 입학한 것은 열 살 때인 1937년도, 일제치하였다. 학교명은 당진공립보통학교. 현재 당진초등학교의 전신이다. 학교는 현재 당진군청의 뒤, 즉, 당진성당 자리에  위치했는데 내가 입학한 그 이듬해 지금의 당진초등학교 자리로 이전했다.

사진 오른쪽 끝에 보이는 나무는 지금도 건재한 당진성당 은행나무다. 왼쪽에 보이는 한옥은 학교 사무실이었고 은행나무 옆 건물은 교실로 쓰이던 곳이었다.

입학식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부모들이 함께 참여했다. 학생들 뒤로 빼곡히 늘어서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는 열 살에 입학했지만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들도 있어 스무 살에 졸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주로 배웠고 조선어는 마치 제2외국어처럼 시간이 따로 있었으나 비중이 크지 않았다.

아래의 사진은 부인 홍 습(82)의 석문 보통학교 졸업식 사진이다. 일본인이었던 교장 사택 뜰에서 찍은 사진인데 가운데 어린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은 교장부인이었다. 당시 석문보통학교를 다닌 학생은 400여명 가량 되었는데 그중 여학생은 아내를 포함해 15명 정도에 불과했다. 여자가 많이 배우면 팔자가 드세다는 통념이 지배하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오른쪽 사진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열 살 때, 송산면 매곡리에 사시던 작은할머님의 환갑잔치에 가서 아버님(작고)과 처음으로 함께 찍은 사진이다. 엄격한 유가의 가풍 속에서 열아홉 살 때까지 회초리를 맞으며 자란 나는 아버님 가까이 서 있는 것 조차 어려워했다. 긴장한 나머지 입을 앙다문채로 차렷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우습다. 아버님은 아흔아홉까지 장수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님의 잠자리는 내가 손수 보아드렸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문안을 드렸었다. 그른 일에는 엄하셨지만 잘한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을 키워주신 아버님, 그 아버님이 그립다.

6남매의 장남으로 성장한 나는 스무살 때 가정을 꾸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50살 되던 무렵부터 유도회 당진지부활동을 비롯 유림활동에 주력해왔다. 1998년도 당진향교 전교를 지냈고 지금도 틈만 나면 유림회관에 들르곤 한다. 세상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서로간의 인내로 가족의 화목을 추구하는 유교의 정신은 가정파괴가 만연한 요즘세태에 더욱 절실한 가치가 아닐 수 없음을 5월 가정의 달에 새삼 생각해 본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