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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로 도배 하던 그때"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신문지로 도배 하던 그때"

차원병 밝은사회 당진클럽 초대회장 / 정원식당 대표

2006년 6월 당진시대 게재

예전엔 집주인들이 세를 올려 달라는 말을 요즘처럼 쉽게 하지 못했다. 대부분 ‘아들이 건물을 쓰겠다고 한다’거나 ‘내가 직접 가게를 해야겠다’는 식으로 돌려서 말하곤 했다. 무일푼으로 장사를 시작한 나는 집세를 올려줄 형편이 못 되어 열세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다.

#1

첫 번째 사진은 1972년도, 지금의 구 당진경찰서 앞(당문사 자리)에서 잡화점을 하던 때이다. 오른쪽에 살짝 당시의 당진읍내의 비포장 거리가 보인다. 당시 읍내 거리에는 소하천이 두개였다. 간혹 장마철에 하천이 범람해 가게로 물이 들어올 새라 양동이로 빗물을 퍼내던 기억이 난다.

#2

두 번째 사진은 60년대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환영슈퍼 바로 옆에 있었던 가게모습이다. 내가 처음 세를 얻어 가게를 시작했을 때였는데 초가지붕에 내가 직접 써서 세워놓은 간판, 격자무늬의 가게문이 인상적이다. 간판엔 도장이라고 크게 쓰여 있지만 도장을 파는 일 뿐만이 아니라 빵도 만들어 팔았고 만화가게를 하기도 했다. 한가지 품목만 취급해서는 먹고살기 어려웠던 때였다.

#3

세 번째 사진은 역시 그 시절 가게 내부모습이다. 가게를 처음 얻어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와 도배를 하는 장면인데 당시엔 벽지가 귀해 천정은 신문으로 도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4

네 번째 사진은 1980년대, 읍내 상가 모습이다. 지금의 녹십자 약국자리인데 이곳으로 이사를 가기로 하고 미리 가서 사진을 찍은 것이다. 소박한 가게이름과 세자리였던 여인숙의 전화번호가 재미있다.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겨두길 좋아했던 성격덕분에 60~70년대 당진읍내 상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내겐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꺼내보고 있노라면 내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과 더불어 당진읍내 상가의 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드디어 5층짜리 건물을 지어 살게 되었다. 지금의 정원식당 건물이다.

남들은 나를 가리켜 인색하다며 왕소금이니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난다느니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나는 배곯았던 지난날을 잊지 않기 위해 옛날에 신던 고무신을 버리지 않고 ‘모셔두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을 되새기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검소한 내 삶의 지표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