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한겨울 폭설 속에 치른 혼인"
이완선 순성농협 조합장
내 한평생을 한마디로 압축하라고 한다면 ‘고향’과 ‘공직’으로 표현하고 싶다. 20대 열혈 청년기에 시작한 공직생활은 평생의 직업이었고 가치관이었으며 화두였다. 지금은 순성농협 조합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또한 늘 든든한 마음의 안식처였던 고향 당진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던 원동력이자 따뜻한 쉼터였다.
#1
첫 번째 사진은 1959년 정미면의 천의초등학교 졸업사진이다. 까까머리에 학생복 차림의 아이들 중 뒷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나다. 작은 원안의 내 사진은 지금 봐도 어쩌면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때는 따로 교복이 없어도 학생복과 비슷한 차림의 옷을 많이 입었다. 또한 한복도 참 많이 입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정미면 덕마리의 집에서 학교까지 40분간을 걸어서 등교했다. 같이 교정에서 뛰어놀던 친구들이 보고싶다.
#2
두 번째 사진은 1971년 내 나이 25살 때 혼인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공직사회에 들어와서 순성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중매로 동갑내기인 아내 유순규를 만나 순성 백석리의 처갓집에서 결혼했다. 당시 많이 애용됐던 정종병은 꽃병 겸 촛대로 잘 이용됐다. 이 때가 음력 12월, 한창 춥던 겨울에 결혼했는데 하필 혼인식 날 폭설이 내려 차가 다니지 못하는 바람에 혼례를 치른 후 집까지 걸어와야 했다.
늘 든든하게 나를 믿고 따라준 아내는 딸 다섯을 낳고 어려운 가정생활을 잘 꾸려왔다. 내가 공직에서 퇴직한 후 농협 조합장에 출마할 때도 반대하지 않고 따라줬다.
#3
세 번째 사진은 지난해 9월 일본농협과 농산물 교류차 일본의 쌀 보관시설을 견학하는 장면이다. 일본에서는 쌀을 어떻게 가공하고 보관하는지 직접 살펴보며 적용가능성을 검토했다.
상당한 부담을 안고 하는 일이지만 농민을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