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고되었던 특전대시절 부대방문 여배우와 즐거웠던 한 때
역경은 한 사람을 거듭 태어나게 만든다. 전쟁을 겪은 소년은 이미 소년이 아니듯 사선(死線)을 넘은 사람에게 그 뒤에 찾아오는 어려움은 더 이상 어려움이 아니었다.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나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1
첫 번째 사진은 1969년 늦가을에 군대에서 찍은 것이다. 군인들이 쓰고 있는 검은 베레모에서 확인할 수 있듯 나는 특전대 창설요원으로 군 생활을 했다. 이 사진을 처음 본 사람들은 대개 가운데 서 있는 미모의 여군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이 여성은 사실 여군이 아니라 영화 ‘검은 베레’를 찍기 위해 우리 부대에 들렀던 배우였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고된 훈련 중에 찾아온 미모의 여배우를 보고 우리들은 앞다투어 사진을 찍었다. 그 아래에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배우 최성이고 그 줄의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나다. 이처럼 한 때 즐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특전대에서 대부분의 군 생활은 여러 번 죽음을 생각했을 정도로 고됐다. 혹독한 훈련과정과 1968년 울진·삼척지구의 대간첩 작전에서 여러 명의 동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 때의 경험은 평생 큰 상처로 남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되기도 했다.
#2
두 번째 사진은 군대를 제대한 후 직장생활을 하던 1973년경에 거래처인 충북 제천의 대흥상회 종업원들과 찍은 것이다. 맨 오른쪽이 나다. 당시 나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했던 문구업체 ‘삼영산업’에서 영업부 사원으로 근무했었다. 한 달에 20일은 거래처로 출장을 다녔지만 군대에서 고생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하루 하루가 재미있기만 했다.
#3
세 번째 사진은 우강 창리의 마을이장을 보던 1987년 여름에 찍었다. 여름 한낮에 마당에 평상을 펴놓고 아내(지영숙), 딸(광은)과 점심을 먹는 장면이다. 뒤에 보이는 우리 집은 당시 초가집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100년 된 집이었다. 종손이었던 나는 이 집에서 일년에 열 한번 제사를 지내고 집안 일을 꾸렸다. 종가집에 시집 온 죄로 인해 아내가 숱한 고생을 치러야 했다. 한 눈에도 오래돼 보이는 부엌문과 흙벽이 이 집의 연대를 짐작케 한다.
#4
네 번째 사진은 지금의 내 모습이다. 죽음과도 싸워 이겼던 내가 어느 덧 환갑의 나이가 됐다. 지나간 청춘을 뒤돌아보면 아쉽기만 하지만 올해 아들(홍은)까지 결혼시키고 나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