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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남지 않아 그림으로 대신했습니다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내 모든 것이었던 새곡교회”

[김남철 호산나교회 담임목사]

송악읍 · 2011년 1월 당진시대 게재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당진읍 시곡리를 떠나 서울행을 한 후 목회자가 되어 다시 돌아온 것이 지난 1995년이었다. 서울 강남구 묘동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다가 송악읍(당시 송악면) 오곡리에 땅을 기증해줄 테니 개척할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오곡리에 새곡교회를 세우고 사역한 지 13년,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새곡교회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1

첫 번째 사진이 새곡교회에 다니던 학생부 아이들과 찍은 사진. 새곡교회가 1995년에 세워졌으니 3년쯤 후인 것 같다. 새곡교회에는 한때 30여명의 성인들과 저 아이들이 함께 다니며 활성화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개척 당시 땅을 기증해주기로 했던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기증한 땅의 등기이전을 미뤄오다 재판을 걸어 땅을 다시 가져가버리는 바람에 새곡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개척교회를 세우려면 교회의 땅을 ‘교회유지재단’이라는 법인으로 등기이전을 했어야 했는데 새문안교회에서 등기이전을 미루고 있던 것이다.

#2

두 번째 사진이 그 새곡교회 모습이다. 젊어서부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장신대(장로회 신학대학) 초대 총학생회장까지 지냈던 나였다. 고향에 돌아와 사역을 하려고 마음먹은 나의 지난 13년이 아무 의미없는 일이 되어버려 아직도 아쉽다.

#3

세 번째 사진은 아내(조흔주, 55)와 아들(성래, 29)의 인하대학교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진에 내려왔는데 아들은 초등학교 마치고 송악중·고등학교를 다녔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