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唐津 體育데이
충남 당진에서는 9개교 연합운동회를 거 1일에 당진공보교 교정에서 교육회주최로 개(開)하고 300여 선수들과 기타 군내 13개 단체 선수 100여인이 회집하여 육상경기를 개최하였는 바 당일 우승은 77.88점으로 신평보교에 귀(歸)하고 모였던 선수중 선수권보지자(保持者)는 1,000미돌(米突-m) 1회에 2분 27초로 송악 이득봉(李得奉), 200미돌 1회에 27초 5분 1로 석문 박상철(朴商哲) 2인이라고. 동아일보 1928년 10월 8일
3일 ●唐津聯合大運動
10월 1일 당진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는 당진군 연합 대운동회를 거행하게 되어 오전 10시에 각 학교 선수급 일반선수 2백여 명의 장엄한 입장식을 거행한 후 순서에 의하여 경기를 마치고 오후 5시에 폐회하였다는데 학교의 우승기는 신평보교로 일반 우승기는 교원단으로 돌아갔다더라.
唐津農民의 窮境, 惡毒한 搾取輩의 跋扈,
수천여 호가 연명할 길이 없다
충남 당진군 합덕, 범천양면은 평원광야로 본래 밭이 없고 전부 논뿐이므로 일반농민들은 연년이 조도(早稻)를 심어먹고 논에 보리를 심어 어려운 생활을 하여 왔었는데 점점 착취수단이 늘어가는 지주들은 보리까지 타작하여 달라고 하며 또 논에 보리를 심으면 소출이 작다고 고압적인 보리를 심어 먹지 못하게 함으로 각 소작인들은 할 일 없이 보리를 심지 못하고 늦은 베를 심게 되어 해마다 여름과 초가을이면 양식이 떨어져 혹 풀잎과 풀뿌리며 이자 비싼 곡식과 돈을 얻어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야 왔었는데 금년에도 여름부터 양식이 떨어져서 수천 호 농민은 풀잎과 좁쌀 되씩 얻어서 연명하다가 초가을을 당하여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견딜 수 없어 그 참상은 이루말 할 수 없었는데 도리어 돈 있는 사람은 일 점의 동정은 고사하고 선장에 있는 황○○(黃○○), 이○○(李○○), 임○○(林○○)외 몇 사람은 보리 돈으로 한 섬에 팔원, 구원 혹 삼원씩과 보리 한 섬에 베 삼백근씩 달라고 지주와 사음을 담보시켜 타작마당에서 주기로 약조하고 각각 농민의 곤궁한 틈을 타서 준 것이 육칠○석이라 하며 당지에 있는 전정태랑(田正太郞-다마사 타로)은 보리 한 섬에 베 270근씩 달라고 약조하고 주었다는데 일반 농민들은 죽지 못하여 할 수 없이 불과 두달 동안에 삼곱씩이 넘는 비싼 이자를 물어주겠다하고 갖다 먹었으나 온 일년 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피땀 흘려가며 지은 곡식을 보리 한 두섬씩 갖다 먹고 송두리째 뺏기겠음으로 원통한 생각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겨울 지낼 일을 생각하고 일반농민은 대공황 중에 있으며 사회의 여론이 비등한다더라.
5일 ●小作組合奮起, 先後策을 講究코자
전기와 같은 간악한 폭리배를 박멸키 위하여 당지 소작조합에서는 일변으로 전후사실을 세세히 조사하며 일변으로는 내월 5일에 합덕면 신흥리에서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장리문제에 대한 조치와 다른 사람은 받지 않은 수세를 소작인에게 반씩 물리는 홍○○(洪○○), 송○○(宋○○)에 대한 수세 등 모든 악세를 일일이 물어 토의 결정하였다더라.
동아일보 1924년 10월 3일
6일 ●貧者戶稅代納
충남 당진군 당진면 구룡리 양수열(梁壽烈)씨는 가세도 별로 넉넉치 못한 처 금년같은 흉작을 당하여 동내 극빈자들이 호세를 납부치 못하여 곤란을 당함으로 동씨는 이에 동정하여 동리 박○○(朴○○)외 11인분의 호세를 대납하였다더라.
동아일보 1928년 10월 3일
石門普校事件證人, 林哲鎬 送局
석문 공립보통학교 만세사건으로 동피의자 임종만(林鍾萬)외 3인이 지난 8월 공주지방법원 홍성지청에서 예심면소로 출감된 후 동지청 검사로부터 경성 복심에 항고하여 피의자급 증인을 당진서에서 소환 심문하여 오던 중 지난 26일에 동사건의 증인 임철호군을 취조중 극히 비밀리에 부친다함은 기보하였거니와 지난 30일 오전 10시에 자동차로 홍성검사국으로 송치하였다고 한다.
조선일보 1930년 10월 5일
沔川公普校 運動計量
당진군 면천공립보통학교에서는 하양학원학생과 연합하여 내 19일에 추계대운동회를 개최한다는데 기 준비상 ○○히 위하여 거 6일에 학무위원회를 개최하였다더라.
조선일보 1923년 10월 13일
沔川學院 學父兄會
당군 면천면 면천학원에서는 거 6일에 학부형회를 개최하고 동학원 학감 안종순(安鍾洵)씨의 학원경비 곤난함에 대한 설명이 유한 바 학부형 일동은 차에 감동되어 선후책을 강구하기로 하였다더라.
동아일보 1923년 10월 14일
자료조사 : 김남석(nsk6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