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면의 포구 중 수산업이 발달한 포구는 시대별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석문면지」를 포함한 향토사료의 경우, 서술 범위가 조선시대 이전까지 포함하고 있어 본 연구조사의 범위 내 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석문면지」에서는 왜목이 큰 어선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으로 기술되어 있으나 주민 구술을 통해 확인한 결과 왜목은 193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수산업이 크게 발달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연유는 본 연구가 주민들의 기억을 토대로 진행된 구술사 연구로 조사범위가 80세(구술 대상자 나이)를 기준으로 할 때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이기 때문인 탓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이전까지 석문면 소재의 포구에는 아산만 안쪽에 위치한 한진, 맷돌포, 성구미, 오도에 비해 수산물을 직접 포획하는 어업을 목적으로 하는 어선의 수는 적었다.
다만 1960년대말 삼길포 등 서산의 어선들이 용무치에 어막을 치고 장고항 앞바다에서 실치를 잡아 건조하기 시작하면서 용무치와 장고항에 어선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때 일부 장고항 등 당진 사람들이 실치잡이를 시작했으며 서산의 어민들이 장고항에 정착하면서 실치의 명소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석문면의 포구에서는 이렇듯 어선을 이용해 수산물을 직접 포획하는 어업은 극히 일부였다. 반면 조석간만의 차와 천연갯벌을 이용한 맨손어업과 ‘살’이라 불리는 정치망을 이용한 어업이 더욱 발달하였다.
특히 맨손어업은 석문방조제와 대호방조제 안 간석지, 장고항, 용무치, 도비도와 난지도 등 거의 모든 포구에서 발달하였다. 수산물로는 낙지와 굴, 바지락, 김이 가장 유명했으며 일부 지역에서 한때 수출용 갯지렁이 채취가 성행했다.
이후 방조제 건설로 갯벌이 소실되면서 석문면의 맨손어업 규모는 대폭 감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바지락 양식장을 주축으로 맨손어업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방조제와 간척사업이 이뤄지기 전 석문지역에서 정치망을 이용한 어업이 발달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정치망이란 넓은 간석지에서 한자리에 그물을 고정시켜 조석 간만의 차를 이용해 그곳을 지나는 고기를 잡는 어구를 일컫는다. 구술자들이 언급한 정치망 어구의 전래어로는 어살, 건강망, 개막이, 창그물 등이 있었다.
학문적으로는 개펄에 마장(말뚝)을 V자 형태로 박아 매고 중앙 지점에 임통을 설치하는 덤장, 대나무나 갈대, 싸리 등으로 엮은 발을 중앙의 어취부와 임통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세워 설치하는 어살 등 정치망 어구의 형태와 종류가 세분화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