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화나무문화공원문화제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무덥던 어느 여름 날 시원한 그늘이 그리워 송산 삼월리 회화나무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나무를 마주하는 순간 가슴 한편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예전의 웅장했던 회화나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수세가 확연히 약해져 가고 있는 듯이 보여 안타까웠다.

가까이 가보니 주변에는 각종 잡동사니와 퇴비들이 듬성듬성 쌓여 있었고 주변의 풀들이 무슨 이유인지 덩달아 시들어 가고 있었다. 500년을 이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세상의 역사가 되어온 회화나무다.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다웠으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을까. 이제라도 온전한 돌봄이 필요해 보였다.

회화나무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품을 내어주었고, 가지는 그네 맬 자리와 거꾸로 매달릴 아버지의 팔뚝이 되어주었다.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도 아이 몇 명이 숨고도 남을 만큼 커서 어른 스무 명이 넘게 서 있는 것처럼 훌륭한 감출 곳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고 불렀다. 그렇게 놀던 아이들이 아버지가 되었고 할아버지가 되었다. 또 그들의 손자는 지금도 “할아버지 나무”라고 부르며 경이로운 마음으로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태풍 매미로 계곡이 쓸려 나가고 곤파스로 온 동네 나무가 뚝뚝 잘려 나갔어도 500년이 넘게 굳건히 버티며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주던 나무였다. 송산 삼월리 회화나무는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도 42년이 지난 오늘에야 자신만의 터전을 얻었고 ‘회화나무 문화공원’으로 다시 500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야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창택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회화나무는 1517년 조선 중기의 문신인 용재 이행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은거하면서 덕수이씨 후손의 번영을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행의 아버지 연헌 이의무는 홍주목사를 지냈으며 다섯 아들이 높은 벼슬에 오른 당대의 명문가였다. 능안 묘역에는 중종께서 공적을 치하하며 하사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의무는 송산 도문리 능안에 묘터를 마련하고 삼월리 창택에는 집터를 마련하였다. 다섯 아들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일가오제의 광영이라며 칭송받았다 한다.

송산 명산리 동악 서원에 배향된 동악 이안눌, 한학의 4대가로 불렸던 택당 이식, 홍주목사를 지낸 목곡 이기진 등이 모두 이의무의 후손들이다.

이 나무는 수고가 30m에 이르고 흉고가 6m이다. 수형이 아름답고 웅장하며 자손의 입신양명을 기원하며 심었다하여 ‘학자수’라 부르고 있다.

2019년 송산면주민자치위원회의 제안으로 당진시장이 현장을 방문하면서 ‘회화나무 공원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당진시에서 부지 1500평을 매입하여 고택터에 있던 가옥을 리모델링하고 주민복합문화 공간으로 조성하였으며 진입로 확·포장과 주차장 시설을 완료하여 새 단장을 마쳤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 창택산 봉수 – 능안생태공원 – 이의무 신도비와 덕수이씨 능안 묘역으로 이어지는 시민 휴식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고택 자리를 리모델링한 소박한 건물에는 이행 선생의 한시와 이근배 시인의 현대시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부속 건물에는 송산면 소개와 관련 서적이 소개되고 있으며 소모임을 운영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이제 송산 삼월리 회화나무는 이름만 천연기념물로 불리던 안타까운 시간을 뒤로하고 명실상부한 당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곳이 문화의 향기로 채워지고 지역사회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