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로 카네이션이 오가며 따뜻한 감사의 인사가 전해질 때 이 순간이 더 힘들고, 야속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가족으로부터 고립된 이들이다. 88세의 서순덕 할머니는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이 싫다”며 “정말 살고싶지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거처가 없어 아들의 지인 집에 잠시 머무는 서순덕 할머니가 신문사를 찾았다. 죽기 전에는 꼭 자신의 서글픈 한을 기사로 담고 싶다는 말과 함께다. 88세의 할머니는 왜 죽음을 생각했을까. 잠시 지낼 곳도 없는 당진을 1시간이 걸려 경기도 화성에서부터 홀로 찾아왔을까.

일찍이 세상 떠난 남편

매일 술에 취해 살던 남편은 41세의 나이로 간암이라는 병명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남편은 연탄집게 하나도 남겨 놓지 않고 떠났다”고 말했다. 남겨진 재산은 없었고, 남는 건 빚뿐이었다. 그리고 홀로 키워야 하는 자녀가 셋이나 있었다. 할머니의 오랜 기억을 따라 가면 힘든 순간밖에 없었다. 자식들 입에 밥은 넣어야 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궂은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식당 일은 물론 유원지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기도 했다. 낮에는 작은 포장마차를 열어 라면을 팔고, 밤에는 남의 식당에서 일하는 삶을 살아왔다. 잠깐의 운이었는지, 라면 팔던 자리에 도로가 나면서 일부 보상을 받게 됐다. 보상 받은 돈에 더해 30여 년 순대국밥을 팔며 인천에서 살아왔다.

“더이상 살고싶지 않아”

나이가 일흔이 넘고 요리하는 게 쉽지 않아졌다. 불은 껐는지 깜빡 잊는 날도 생겼다. 모든 걸 청산하고 딸이 사는 당진을 오게 된 것이 약 15년 전이다. 자녀를 키우느라 수중에 남은 돈은 없었단다. 당진에서의 생활도 쉽진 않았다. 특히 딸과 틀어지면서 상황이 더 안 좋게 풀렸다. 첫째 아들이 얻어 준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거처를 잃게 됐다. 아들을 따라 아들의 지인이라는 경기도 화성의 한 집에 40여 일을 머문 서 할머니는 이곳에서 아들과의 관계가 안 좋아지고, 엘리베이터 없이 4층을 오갈 수도 없어 정서적 고립을 느껴야만 했다. 그는 “가족도 아닌 아들의 지인의 집에 머무는 것도 미안했다”며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아 죽을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하면 피해를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싶었다”며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이제야 방법을 찾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서순덕 할머니는 15년 동안 살았던 당진의 기억을 더듬어 신문사로 연락했다. 하지만 당진에서 당장 지낼 거처도 없었고, 할머니의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당진시노인복지관과 충청남도노인전문보호기관에 연락해도 마땅한 답이 없었다. 더구나 현재 거주지가 화성시라서 화성의 노인전문보호기관으로 연결해야만 했다. 이후 사례관리를 담당하는 당진시 사회복지과 행복키움지원팀에 연락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적도 없는 할머니를 도울 길이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복지과 행복키움지원팀에서는 사연을 듣고 바로 할머니가 있는 곳을 찾아 상담을 시작햇다. 할머니의 건강과 요구하는 바를 듣고 할머니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사례관리를 담당한 반은숙 주무관은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하니 할머니가 ‘이제야 (살) 방법이 나온다’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이후 할머니는 “당진시에서 말해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방법을 신청해 볼 것”이라며 “고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