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아내 이야기로 활짝 펴졌다. 23년 동안 아픈 아내를 돌봐 이제는 웬만한 살림은 고수가 됐고 김치도 손수 담근다. 할아버지의 간병은 아내가 60세에 들어서고 파킨슨병이 발병하면서 시작됐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23년이다. 세월이 흘러 얼굴에 내려앉은 깊은 주름엔 그저 젊은 날 아내를 고생시킨 것에 대한 미안함과 아내에 대한 사랑, 죽는 날까지 아내를 손수 돌보겠다는 우제선 씨의 지극정성이 담긴 마음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한눈에 반한 내 사랑

송악읍 복운3리에 오로지 아내 사랑에 정성인 우제선(81) 할아버님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우제선 씨의 고향은 북한 연백군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우제선 씨의 가족들도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처음엔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져 내려왔지만 다행히 남한에 도착하고 가족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서울에 정착한 우제선 씨와 가족들은 먹고살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다 1960년 베트남전쟁이 발발하면서 우제선 씨는 가족들을 위해 월남전 파병에 지원했다. 지원 전 해병대에 입대한 우 씨는 지원한 월남전에서도 해병대로 참전했다.

사선이 오가는 타국의 전쟁통에서 1년 2개월을 버텨 고국으로 살아 돌아온 우제선 씨는 베트남에서 찍은 사진을 현상하기 위해 우연히 들른 서울 소재 사진관에서 한 살 연상인 지금의 아내 오인숙(82) 씨를 만났다.

우제선 씨는 그날을 회상하며 “처음 본 아내가 너무 예뻤다”며 “첫눈에 반한 아내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금의 처남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이후 처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아내와 연애하고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하며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홀로 둔 10년

우제선 씨는 결혼 후 용인에 있는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취직했다. 그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근처에 땅을 사서 집을 지으려 했던 우 씨는 처남의 다급한 사정에 처남이 그때 당시 갖고 있던 송악읍 복운3리 땅을 사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내인 오인숙 씨의 친정이 충남 예산군이라 이곳에 정착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때 처남에게 산 땅이 지금의 집터인 복운3리다. 집을 지은지 13년째라는 우 씨는 “당시 살림이 조금씩 나아져 돈모으는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행은 갑자기 찾아오는 법인지 친구들의 부탁으로 보증을 서줬던 우 씨는 빌린 돈을 상환하지 못한 친구들 때문에 다시 살림이 궁핍해지고 말았다. 보증 선 것도 아내에게 말을 하지 못해 혼자 끙끙 앓던 우제선 씨는 결국 중동으로 일을 하러 떠난다.

당시를 회상하던 우제선 씨는 “중동에 있던 세월이 10년”이라며 “아이들 크는 것도 6명의 어린 동생들이 시집, 장가가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없는 10년 동안 맏며느리였던 아내가 내 동생들 결혼을 다 시키고 아이들도 혼자 키웠다”며 미안해했다.

중동에서 10년간 일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우 씨는 미안함에 아내를 데리고 전국 곳곳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찰을 좋아했던 아내와 낚시를 좋아하는 우 씨는 “여행을 다니면 아내를 근처 사찰에 내려주고 본인은 낚시하러 갔다”면서 껄껄 웃었다.

파킨슨과 치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와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60세에 들어선 아내에게 병환이 찾아든 것이다. 병명은 파킨슨병, 퇴행성 뇌 질환이었다. 파킨슨병에 걸린 아내는 서서히 운동 능력이 저하되면서 결국엔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됐다.

우제선 씨는 “활동적인 사람이 한순간에 그리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아내를 홀로 둔 10년의 세월이 너무 미안했고, 결국 내가 아내를 간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시작한 우제석 씨의 간병은 우 씨의 일상을 변하게 했다. 그렇게도 좋아했던 낚시를 그만뒀고, 아내를 간병하기 위해 의학 서적을 읽고 정보를 모았다. 그리고 본인과 아내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요리도 시작했다. 지금은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줄 안다는 우제선 씨는 김치도 담궈먹을 정도라고.

그렇게 23년을 아내 곁에서 간병을 했다. 현재 아내 오인숙 씨는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고 혀가 굳어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깊다. 게다가 치매 증상까지 겹쳤다. 어떤 날은 기저귀를 채워놨는데도 치매 때문에 기저귀를 풀어 온 벽과 이불에 잔뜩 변을 묻혀 놓은 적도 있다고.

그 정도면 힘들고 미워질 법도 한데 우제선 씨는 아내 오인숙 씨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 뿐이란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오

엎친데 겹친격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던가. 우제선 씨는 나이가 들면서 월남전 참전의 휴유증으로 고엽제 피해를 입어 몸이 좋지 않다. 특히 다리가 좋지 않아 하루에 약만 30여 개씩 복용한다.

이제 나이도 여든이 넘었다. 그러자 주변 지인과 자식들은 우제선 씨를 생각하는 마음에 이제 그만 아내를 요양원에 모시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화를 버럭버럭 낸다. 우제선 씨는 “고생한 아내를 내가 돌봐야지 누가 돌보냐”고 전했다. 얼마나 그랬는지 이제는 자식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우제선 씨의 뜻에 맡기고 있다고.

그저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만 가득하다는 우제선 씨의 바람은 “아내보다 오래 살아서 아내를 먼저 잘 보내고 본인이 뒤따라가는 것”이라고. 죽는 날까지 아내를 간병하겠다는 우제선 씨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현 세대 가정의 위기에 대해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여보, 오래오래 곁에 있다가 먼저 가시오. 내가 잘 보내주고 나도 가리다.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