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0 총선이 끝난 지도 벌써 3개월이 다 돼간다. 돌이켜보면 역대 총선 중에서 야당이 이토록 압승한 선거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아마 선거 당시 야당 후보자 자신들도 국민들이 이 정도로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192대 108 의석. 그야말로 야당의 대승이다. 하지만 선거에서 압승은 자칫 오만과 독선의 독초가 싹틀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승자 독식이나 무소불위의 늪으로 빠지기 쉽다. 과거 독재정권들의 종말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하면 심히 우려스려운 게 사실이다. 독재정권의 말로를 반면교사로 삼아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각성할 필요가 있다.
어느 진영이 선거를 압승으로 이기면 승·패자의 관계가 호적수나 대화의 관계가 아니고 원수나 적의 관계로 변질되고 만다. 서로 불신하고 경계하든지 또는 서로가 주종의 비굴한 관계를 맺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근소한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됐을 때 유권자들은 최상의 선거라 여기며 박수를 보낸다. 약간의 차이로 이기고 지면 승자는 우선 교만할 수 없다. 자기의 승리를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반대했던 유권자들을 의식하여 더욱 열심히 공정하고 정의롭게 정치 활동을 수행한다.
패자도 당당하다. 비록 졌지만 조금도 비굴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승자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보낼 수 있고 자기를 지지해준 유권자들이 있기에 다음번의 기회를 바라보며 다음 계획을 준비하고 추진한다. 여기서 승자와 패자의 관계는 원수와 적이 아니라 대화를 모색하면서 국민을 위한 상생의 길을 찾게 된다.
오늘날 성숙한 개방체제를 가꾸며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에서는 정치적 경쟁이 거의 백중(伯仲)의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들이 성숙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안정된 나라라는 것을 뜻한다. 서구 열방들도 압승의 선거 현상 없이 막상막하로 승패가 갈리는 것이 보통이다. 만일 압승의 선거 현상이 나타나면 국민들은 염려하고 걱정한다.
폐쇄적인 국가에서는 승자의 지지율이 매우 높다. 어떤 공산국가에서는 거의 100%에 가까운 지지율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런 나라는 한마디로 병든 나라이며 정상적인 국가라 볼 수 없다. 이러한 국가의 승자는 만일 지지율이 100%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회 전체가 불안해지고 초조한 기운이 감돈다. 승자는 기행적, 일탈적 행동을 저지르기 쉽고, 때문에 폐쇄적 국가는 일사분란의 단결을 국민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일사불란(一絲不亂)은 권장할만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 줄의 실오라기가 잘못되면 모두가 불란이 아닌 혼란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진실로 강한 것은 다사불란(多絲不亂)이다. 다사불란은 압승의 정치 풍토가 기승하는 곳에서는 뿌리내리지 못한다. 다사불란한 사회가 되면 진정한 대화와 단합으로 성숙된 열린 사회가 가능해지고 승자인 지배계층도 여론을 경청한다.
우리나라 선거 토양도 하루빨리 압승의 현상이 사라져야 한다. 압승은 결코 건강한 정치 풍향이 아니다. 오히려 불신과 열등의 상징임을 국민들은 깨달아야 할 때가 됐다. 국민소득 3만 6000불 시대를 맞아 우등 국민으로서 이에 걸맞는 품격 높은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서자.
그러고 보니 다음 선거가 2년도 안 남았다. 이 2년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할지를 여야 정치 지도층은 곰곰이 숙고하여 주길 바란다.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명하다. 국민 무서운 줄 명심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