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초등학교 출신의 김도운 학생이 유학 중 방학기간을 맞아 찾은 당진에서 봉사에 나서 주변의 훈훈함을 샀다. 도운 학생의 봉사는 올해만 이뤄진 것이 아닌,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나선 작은 행동에 주변의 박수가 이어졌다.
16살의 김도운 학생(父김명진·母박은경)은 당진초 6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제주에 있는 국제학교엔 브랭섬홀 아시아에 진학했다. 영어를 많이 사용할 줄 알았던 국제학교지만, 막상 영어를 쓰는 일이 많지 않아 도운 학생은 유학의 뜻을 부모님에게 비췄다. 도운 학생은 “부모님의 교육관이 자유롭다”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부모님이 아무 말도 없이 해보라고 하고, 부모님에게 물어보기 전까지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덕분에 실수도 하면서 배우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혼자 유학길에 오른 도운 학생은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The Bement School을 졸업하고, 현재는 코네티컷주에 있는 Westminster Shool에서 학업을 이어오고 있다.
라틴어 공부에서 봉사로 이어져
도운 학생이 봉사에 나선 계기는 8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제2외국어로 라틴어를 배웠던 도운 학생은 방학 기간 중 찾은 한국에서 라틴어를 더 배우고 싶었으나 당진에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서울 등 도시권을 오가야 했지만, 다리를 다쳐 이동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도운 학생의 부모님은 수소문 끝에 천주교 대전교구의 성병렬 신부를 만나게 됐다.

라틴어에 능통했던 성병렬 신부는 네팔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잠시 한국에 찾았던 상황이었다. 당진과 멀지 않은 예산의 신례원 성당에 지냈던 성병렬 신부는 기꺼이 도운 학생에게 라틴어를 가르쳐줬다. 성 신부는 공부만이 아닌 도운 학생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봉사의 길을 안내했다. 그 기회가 이어지면서 성 신부와 도운 학생은 네팔의 히말라야 등반에 이어 선교 활동이 이뤄진 곳을 찾게 된다. 그때 도운 학생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던 네팔의 현실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교와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도운 학생도 점점 봉사의 뜻이 커지기 시작했다.
길거리 봉사로 후원금 모아
한국에 돌아온 도운 학생은 지난해 방학, 당진의 길거리에 섰다. 네팔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쌀을 지원하고자 공원 등을 돌며 바이올린 공연을 펼쳤다. 도운 학생은 “바이올린 공연을 처음 할 때 집 앞 공원에서 했는데 그때는 많이 부끄러워서 힘들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이겨낸 도운 학생은 연주 봉사로 1000만 원의 수익금을 모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했다.
봉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만 올해는 날이 더워 길거리에 나서지 못했다. 대신 요양원을 찾아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어르신들에게 기쁨을 전했다. 도운 학생은 “어르신들이 노래를 따라 불러 주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도운 학생의 어머니인 박은경 씨는 “아이가 봉사를 하면서 얻는 행복함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도운 학생이 봉사했던 온누리주야간보호센터의 이옥화 센터장은 “짧은 방학 중에 한국에 돌아와 봉사하는 모습이 대견하다”며 “당진 출신의 인재가 고향을 위하는 마음이 기특해 봉사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봉사의 영향력 알리고 싶어”
한편 도운 학생은 스스로 말하길 ‘모험심이 강한’ 아이다. 그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흥미로웠다”며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디베이트 활동도 하고, 더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함께 요양원에 가서 연주를 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운 학생의 목표는 이과 계열에서 전공하는 것이다. 아직 뚜렷한 진로는 정하지 않았지만 꿈 하나는 분명하다. 그는 “지금처럼 봉사의 즐거움을 잊지 않고 자라 평생 봉사를 하면서 사는 것도 꿈의 일부”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도운 학생은 “더 많은 사람이 봉사를 같이 해줬으면 한다”며 “엄청 잘하는 것이 아니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자기 자신 또는 다른 누군가에게 큰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큰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