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당진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마을의 모습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마을의 이야기를 신문 지면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록한다.

※ 이 기사는 2024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취재·보도합니다.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면천면 자개1리 마을 모습
면천면 자개1리 마을 모습

면천면 자개1리는 호랑이 전설이 깃든 ‘배꼽 소나무’부터 주민들의 따듯한 정까지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숨쉬는 마을이다.

면천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운미(60) 자개1리 이장은 “올해 처음으로 이장을 맡았다”면서 “우리 동네는 참 예쁜 동네고, 단합이 잘 된다”고 말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대대로 자개1리에 살았다는 이상호(64) 지도자는 타지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상호 지도자는 “이장을 만나서 처음으로 지도자의 일을 맡게 됐다”면서 “이장, 부녀회장과 같이 열심히 마을을 잘 꾸려나가겠다”고 전했다.

안순자(71) 부녀회장은 서산에서 태어나 18살의 나이로 면천으로 시집왔다. 안순자 부녀회장은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어서 70 넘은 나이에 부녀회장이라는 직책을 맡았는데, 이장과 지도자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개1리는 5개 반으로 구성돼 있다. 이상호 지도자는 “1반은 새터말, 2반은 안말, 3반은 큰 자갈, 4반은 작은 자갈, 5반은 미룰이라는 자연 부락 이름이 있다”면서 “이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왔다”고 덧붙였다.

과거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한과 만들기 사업을 했었다.
과거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한과 만들기 사업을 했었다.
주민들이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주민들이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고령화에 원예 농사 줄어

1970~1980년대 마을에서는 선구적인 특수작물로 오이를 많이 심었단다. 또한 면천지역 주산 작물이 꽈리고추인 만큼 꽈리고추 농사도 많았다.

“1960년대 초반에 면천농고의 이태선 선생이 오이 농사를 퍼트렸어. 이태선 선생 고향이 자개2리인데, 그 양반이 수원농대(현 서울대 농과대학)를 나와서 면천농고 교장을 하면서 지역에 오이 농사를 배포한 거야. 사실 시작은 자개2리에서 시작해서 우리까지 올라온 거지. 그 당시 김해와 대전, 우리 면천이 거의 동시에 오이를 생산한 지역으로 봐야 해.” (이건웅 노인회장)

“옛날에는 오이 하우스도 지금처럼 철근으로 세우지 않고, 각개목으로 세웠어요. 그래서 바람이 불면 날아가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무너져 내려앉아서 힘들었죠. 오이는 하루 한 번씩 꼭 물을 줘야 해요. 지금처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그 시절에는 지게로 물통을 져서 오이 밭에 물을 주곤 했어요. (안순자 부녀회장)

이 당시 오이는 고소득 작물이었다. 이건웅 노인회장 말에 따르면 오이 한 짝에 쌀 한 짝 가격을 넘겼다고. 하지만 고령화라는 세월의 흐름을 어쩔 수 없었다. 유 이장은 “나이가 들고 주민들이 연로해지니 이젠 원예 농사를 많이 하지 못하고, 작은 규모로 논·밭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고사하기 전 남산봉‘배꼽 소나무’의 모습. 아름드리 컸던 소나무는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사진=면천면지)
고사하기 전 남산봉‘배꼽 소나무’의 모습. 아름드리 컸던 소나무는 마을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사진=면천면지)

이형래와 남산봉 소나무 전설

서울에 남산이 있는 것처럼, 면천에도 남산이 있다. 남산의 남산봉에는 ‘이형래와 남산봉 소나무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전설은 이형래와 그가 타고 다녔다는 호랑이를 매어 놓았던 남산봉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다.

전설 속 이형래라는 인물은 이건웅 노인회장의 9대조이다. 이건웅 노인회장은 “호랑이 목에 채웠던 방울이 있었고 이를 우리 할머니가 목격했다”면서 “또한 호랑이 채가 있는데, 가죽을 탁탁 치면 채가 펴져서 호랑이를 칠 수 있고, 놔두면 말려서 (길이가) 한 뼘 정도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구경 못하고 얘기만 들었다”고 덧붙였다.

전설에 등장하는 소나무도 실제로 있었다. 유운미 이장은 “그 소나무는 ‘배꼽 소나무’라고 불렸다”며 “현재는 고사했는데 나무가 살아있었으면 마을의 큰 자산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도자는 “송진이 뭉친 모양이 꼭 사람 배꼽 모양처럼 생겨,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며 “우리 어렸을 때도 그 부분을 밟고 나무에 올라 놀곤 했다”고 전했다.

안 부녀회장은 “나무가 하늘을 향해 길게 자라지 않고 가지가 옆으로 쫙 뻗어 참 크고 울창했다”면서 “그 소나무가 고사했을 때, 우연히 산에 올라갔다가 쓰러진 소나무를 보고 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마을회관 앞 마당에 조성된 작은 정원.
마을회관 앞 마당에 조성된 작은 정원.
(왼쪽부터) 안순자 부녀회장, 김재설 전 이장, 이건웅 노인회장, 이상호 지도자, 유운미 이장
(왼쪽부터) 안순자 부녀회장, 김재설 전 이장, 이건웅 노인회장, 이상호 지도자, 유운미 이장
몇년 흑백 사진으로 촬영한 마을주민들의 모습
몇년 흑백 사진으로 촬영한 마을주민들의 모습

“샘물마을예술학교 활용 못해 아쉽”

유 이장에 따르면, 현재 자개1리에는 61세대, 75명이 거주하고 있다. 아담한 마을에서는 여러 공동체 활동을 해왔다.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장을 맡았다는 김재설(78) 전 이장은 “마을 만들기 운동, 꽃길 가꾸기 등을 했는데, 마을주민들이 많이 협조를 해줘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며 “마을 만들기 운동은 올해도 유 이장이 이어 받아 잘 실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화합을 이루고 귀촌하는 주민과도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유 이장은 “과거 농한기에 주민들과 했던 한과 만들기 사업을 다시 부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마을회관 앞마당에 작은 정원을 정리해서 야자매트도 깔고 꽃도 심어 꾸몄다”면서 “가을쯤에 주민들과의 화합 행사를 한번 열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마을회관 옆에는 남산샘물마을예술학교가 있다. 폐교된 남산초를 당진시가 매입하고 리모델링해 지난 2017년 개관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어 주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유 이장은 “시에서 위탁 운영을 하든지 또는 주민들의 일거리 창출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