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대 철학과 엄정식 교수
나는 네 살 적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사춘기 초반에 들어 그 그리움이 더욱 절실해졌고 이것이 내 안에서 점차 하나의 추상적 대상으로 형상화되어 ‘님’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표면화되자 새삼스럽게 오래 전에 작고한, 희미한 흑백 사진 한 장으로밖에 그 모습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용솟음치듯 분출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선친의 고향인 당진을 찾아간 이유였다. 지금부터 18년 전의 일이다.
<본문중에서, 당진일기 designtimesp=20141>
엄정식 교수가 당진을 찾은 이유
" 젊은 시절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버릇이 그것이었다… 마침내 어느 날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에게 ‘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거의 매일 일기를 노트에 기록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내부로부터 들었다는 그 음성의 주인공인 ‘다이몬’을 만났다. 그 이래로 나는 분화되고 승화된 나의 자아를 ‘다이몬’이라고 불러온 것이다. 젊은 시절 나는 외로웠고 쓸쓸했으며 괴로운 순간들을 홀로 견디어냈다. 나는 운신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혀 보려고 사유의 빛줄기를 좇아 몸부림치듯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서 그렇게 헤맸던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다이몬’이란 이름으로 나의 내부 깊숙한 곳에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 자신을 찾아서’ 끊임없이 방황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방황은 ‘님’ 혹은 ‘다이몬’과의 대화를 나누기 훨씬 전부터 싹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네 살 적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사춘기 초반에 들어 그 그리움이 더욱 절실해졌고 이것이 내 안에서 점차 하나의 추상적 대상으로 형상화되어 ‘님’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표면화되자 새삼스럽게 오래 전에 작고한, 희미한 흑백 사진 한 장으로밖에 그 모습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용솟음치듯 분출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처음으로 선친의 고향인 당진을 찾아간 이유였다. 지금부터 18년 전의 일이다. <본문중에서, 당진일기 designtimesp=20147> "
나 자신을 찾는 작업, 우리 자신의 철학
서강대 철학과 교수인 엄정식(59) 선생이 왜 당진을 찾았으며 왜 이곳에 영혼의 안식처를 두었는가 하는 것은 그분이 최근에 출간한 철학에세이집 <당진일기 designtimesp=20152>를 보면 이처럼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찾는 여정에서 만난 아버지와의 관계 재정립이고 거기서 다시 시작되는 여행을 달갑게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의 정립이라고 보인다. 철학 하면 서양철학을 떠올리고 ‘동양’철학을 귿이 따로 부르는 우리의 풍토에서 엄교수가 남기는 ‘아버지와의 만남’이라는 이미지는 전통적이고 동양적인 느낌을 주어 친숙하고 편안하기만 하다. 엄교수에게서 철학은 바로 우리 자신의 것이 된다. 거기에 이 책의, 이분이 가진 철학의 매력이 있다.
" 비록 나는 아버지가 살던 바로 그 고장을 찾지는 못하였으나 마치 그 영혼에 이끌리듯 어느 한적한 산골마을을 찾아가 150년 가까이 된 농가를 한 채 마련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백여년 만에 아버지에게 고향을 찾아드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틈틈이 이곳에 올 때마다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사실이다. 그 경험이 때로는 너무도 즐겁고 황홀하며 때로는 너무도 놀랍고 충만하여 홀로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본문중에서, 당진일기 designtimesp=20155> "
당진의 한 마을에 연결된 사유의 기록, 혹은 당진 시골에서 겪은 영혼의 순례에 관한 기록인 <당진일기 designtimesp=20157>는 이러한 황홀하고 충만한 체험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1993년부터 3년여에 걸쳐 계간 <철학과 현실 designtimesp=20158>에 글을 연재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올해 2월에 초판을 발간했지만 이내 절판돼 5월에 다시 인쇄에 들어갈 만큼 여러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 이 책은 엄교수가 당진에 몰래 머물다 가곤 했던 이 18년 동안에 이곳에서 쓴 책 세 권 중 한 권이기도 하다.
18년간 몰래 왔지만 이젠 신고식 해야지
12월 중순의 어느 날 당진읍 원당리 어느 모퉁이 모퉁이를 돌아 들어간 곳에서 그분의 허름한 안식처를 찾았다.
추위로 근처가 꽁꽁 얼어있었는데 작은 방 하나에만 온기가 있을 뿐인 그분의 거처는 느닷없이 찾아온 객에게 아무 경계심 없이 이곳 저곳 문을 열어 보여주며 묻는 말에도 그저 지나는 말처럼 가볍게 대답하는 집주인처럼 소박하고 꾸밈이 없었다.
밖으로 뒷산 나무들이 내다보이도록 조그만 창을 낸 식탁에는 오이와 김치쪼가리가 조촐한 식사풍경을 말해주듯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이번에 이삼일 이곳을 급하게 다녀가는 이유는 바쁘디 바쁜 일과 중에서 뭔가를 하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은 크리스마스 캐롤을 여기서 듣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단순히 흥겨운 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후에야 알 수 있었는데 종교적인 영감은 엄정식 교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성찰의 영역이자 그 문이었다. 자아의 탐구를 위한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철학적 사유 안에서도 엄교수가 일관되게 구해온 것은 예술적 열정과 종교적 영감, 혹은 신비적 직관 같은 것이었다. 상식적인 생각으로도 자아가 숨쉬는 아주 많은 영역 가운데에서 어느 한 구석을 포기하고 도달하려는 성찰이 과연 총체적일 수 있을까 히는 의문이 든다.
놀라는 내가 촌스러운 것인지, 그분의 방에는 손수 그린 자화상과 풍경화 따위가 있었다. 심지어 그동안 펴낸 여러권의 책은 표지를 본인이 직접 그린 추상화로 디자인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음악전문잡지 <객석 designtimesp=20168>에 좋아하는 음악을 연재한 일도 있었다.
이보다 훨씬 앞서 이분은 미국유학 후 ‘80년 광주의 봄’으로 시작된 한국민주주의의 풍랑 속에서 행동하는 지성들과 많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때 “결국 자아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실존하는 ‘나’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대체 18년 동안이나 소리 소문없이 이곳을 다녀간 이유와 비결은 무엇일까 하던 의문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냥 기는 자세로 있다 가곤 했다”는 말이 없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숨은 골, 은곡(隱谷)이라는 마을 이름도 그러하거니와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한 사람의 사색인이 된 느낌’이라는 그분은 전화도 텔레비전도 없는 이 문명의 오지에와서야 비로소 홀로 ‘생각의 골을 깊이 파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엄교수는 얼마 전에 이곳 은곡의 사계절을 담은 비디오테잎 제작을 완성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직접 캠코더를 들고 풍경을 담아 비발디의 종교음악 ‘사계’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그간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을 극구 거절했던 그분이 당진시대의 취재에 응하는 것은 그분 표현대로 “이제는 당진사람으로 존재하겠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 신고식”인 셈이다.
시간이 아까워. 그래서 그냥 존재하기로 했어
“한동안 이곳에서 책을 쓰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지. 그런데 문득 뭔가를 쓰고있는 시간이 아까운 거야. 그래서 그 뒤로는 다른 석학들이 써놓은 것을 되도록 많이 보려고 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시간 역시 무척 아까운 거야. 그래서 다시 한동안은 사색에 잠겨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지 그 시간 역시 아까운 거야. 그래서 뭘 하기로 했는지 알아? 존재하는 일이야. 그래서 이제는 그냥 존재하기로 했지.”
그냥 존재하는 일. 그게 뭘까? 그 순간에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여는 일일까? 의지적으로, 선택적으로 어느 한가지에 몰입함으로써 다른 한가지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치우침 없이 전체를 자신의 전체로 호흡하는 일일까? 통찰력을 가진 채로. 그냥 그대로. 순간이 되는 것일까?
어쨌든 이웃으로부터 엄 교수님이 최근 몇년간 이곳에 오기만 하면 무섭도록 노동을 한다고 들었다. 죽도를 들고 새벽운동을 하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고 뜯어진 집 이곳 저곳을 고치고 땜질하고… 그리고 벽에 창 만한 구멍이 뚫린 방에서 언 겨울을 살고 계시다고 들었다.
김태숙 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