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장이 서는 날이면 김영곤·김동애 부부는 사람들이 모이는 당진시내 구터미널 로타리 일원으로 나간다. 요즘처럼 날이 추울 때도, 반대로 무더운 날에도 거르지 않고 길을 나선다. 고대면 슬항리에서 구터미널 로타리까지 버스타고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 넘는다. 부부는 오후 3시 50분 차에 올라 5시에 내려 그때부터 피켓을 든다. 그들이 지난 2년 반 동안 줄곧 든 피켓은 현 정부의 규탄이다. 겨울에 들어서며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둘러도 어둠이 내린 찬 바람은 빈 곳으로 들어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부는 어둠과도, 추위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지난 3일, 잠들 준비를 하고 있을 야심한 시각 갑작스럽게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현 세대들은 겪지 못했던, 44년 전에나 선포됐던 계엄령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부터 국민은 국회 앞으로 모였다. 서울 한 도심에 장갑차가 등장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에워쌌다. 무장 군인에 의해서 입구가 막히자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었고, 국민들은 온 몸으로 국회를 지키기 위해 막아섰다. 그렇게 300명 전체 국회의원 중 190명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금은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2시간 동안 국민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가 일어난 후 꼬박 10여 일 동안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지난 7일, 국회가 있는 서울 여의도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됐다. 국민의힘 대다수의 국회의원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결국 부결로 돌아갔다. 전국 곳곳에서 집회가 일어났고, 야당은 다시 한번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한 탄핵소추안을 표결키로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 휘둘러”
첫 탄핵소추안이 부결되고, 두 번째 표결이 이뤄지기까지 당진도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 당진장을 맞은 지난 10일, 구터미널 로타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에 앞서 이전부터 김영곤·김동애 부부가 포함된 당진시국회의가 규탄 집회를 이어왔다. 벌써 피켓을 든 지도 2년 7개월이 넘었다.
올해로 78세를 맞은 김동애 씨는 구터미널 로타리에 있는 버스 승강장 옆에 작은 접이식 의자를 펼쳤다. 그리고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팻말을 자신의 앞에 세워 놓았다. 이 조용한 집회가 진행되는 시간은 약 2시간 가량. 해가 저물자 점점 기온이 떨어졌다. 그래도 이 노령의 여인은 굽히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 길에 서야 하는 이유를 피켓으로 보여줬다.
김동애 씨는 “대통령은 국민을 대변해 5년 동안 국가를 잘 통치해 달라고 뽑는 자리”라며 “하지만 윤석열은 그러한 역할은 하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치 조선시대 왕이라도 되는 것마냥 전혀 민주의식을 갖추지 않은 채 그동안 국가 정책을 펼쳐왔다”며 “민주주의는 합의를 거쳐서 집단 지성을 표출하는 것인데, 그는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국민을 거부하고 소통하지 않는다”고 부부가 길에 서야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책 <잘못 뽑은 반장> 생각나”
한편, 계엄 사태 이후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의 눈길이 달라졌다. 김동애 씨는 “이전에는 시위를 한다고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었고, 팻말을 쓰러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라지고 있었다.
뒤편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가게 주인은 사람들이 맨손으로 시위하는 것을 보고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장갑을 무료로 건넸다. 또 구호를 외칠 때는 차선 반대쪽에서 함께 응원의 목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이었다. 현수막 앞으로 나와 탄핵을 찬성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고, 김영곤 씨가 내미는 손을 잡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호서중 2학년 정호빈 학생은 “(대통령이) 이번에 비상계엄을 한 것은 시민을 버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며 “빨리 대통령이 탄핵돼 사태가 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계성초 6학년 이승재·유동하 학생은 “내용은 다르지만 제목이 <잘못 뽑은 반장>이라는 책이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보고 그 책 제목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을 보고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더럽히는 것 같아 싫었다”고 소신있게 전했다.
“여성과 학생 눈에 띄게 늘어”
학생들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내미는 이가 있다. 김동애 씨의 남편이자 한국 현대 노동사의 산 증인이기도 한 김영곤 씨다. 김영곤 씨는 현수막 앞에 서지 않고 뒤로 돌아서 있었다. “나이가 많아 뒤에 서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피켓을 바꿔가며 들던 김 씨는 특히 학생들이 지나갈 때마다 악수를 건넨다.
“서울 여의도 집회 양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젊은 여성들이 많이 나서고 있습니다. 과거만 해도 남성 위주의 사회였지만 지금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조건이 되면서 이제는 여성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진은 어린 학생들이 눈에 띄어요. 여성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창의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달라지겠구나 싶어요.”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 되길”
지난 2년 반 동안 집회를 하면서 달라진 것도 많았다고. 그는 “시민의 인식이 바뀌었다”며 “처음 악수를 건넬 때만 해도 거절하거나 낯설어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계엄 사태가 벌어지고 바로 다음 날 시민단체에서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지난 9일에는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까지 이어졌다”며 “그동안 꾸준하게 축적돼 온 당진의 시민 운동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오늘보다 나은 세상’이다. 김동애 씨는 “이번 계엄 사태는 그동안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정성들인 사람들을 짓밟은 것”이라며 “계엄 사태로 인해 몇 조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고, 그 피해를 결국에 국민이 지게 된다”고 현 사태의 인타까움과 바람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