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 부모님 생각하며 한걸음에 달려온 민주 시민
영하의 추위를 녹이고 경찰 차벽을 뚫은 농업농민을 사랑하는 청년학생의 열정
왜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상경했는가?
올해 농민들은 고온과 잦은 장마 속에 각종 병충해와 농자재값은 폭등했고 벼 값 등 농산물값은 폭락을 거듭한 것이다. 거기에다 대통령의 두 번에 걸친 양곡관리법 거부와 비상계엄령선포는 부글부글 끓던 농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지난 16일 전봉준 투쟁단이 경남 진주와 전남 무안에서 동군과 서군으로 트랙터 대행진 출정식이 각각 거행됐고 19일은 당진농민회가 전남북과 충남북이 소속된 서군에 편재되어 트랙터와 1톤 차량을 몰고 이종섭 회장을 비롯해 15명의 전봉준 투쟁단이 공주 우금치에 집결했다. 우금치는 130년 전 동학농민군이 부패한 조정과 사회적 적폐를 혁신을 제시하며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다 장열히 희생된 곳이다.
전봉준투쟁단은 130년전 실패한 한양입성과 사회대개혁 성사를 결의하고 윤석열정권 폐정개혁 12조를 선포했다. 농민들은 130년 전 넘지 못했던 우금치 고개에 꽃잎보다 더 짙은 붉은피를 흘리며 죽어갔던 영혼들에게 실현하지 못했던 무능부패정권 퇴진과 친일파를 척결하기 위한 서울 상경을 실행하자고 다짐했다.
전봉준투쟁단은 수원에서 1박하고 21일 과천을 지나 남태령에 도착했는데 충남전봉준투쟁단은 본대와 별도로 한남대교로 진입해 중간쯤 지날 때 경찰의 제지를 받고 다시 남태령으로 복귀했다.
남태령의 상황은 경찰차벽으로 고립되었고 항의해도 경찰들은 앵무새처럼 도심 교통 혼잡 이유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기적의 시작은 몇몇 유튜버들의 영상을 타고 일어나기 시작한 것.
트랙터 투쟁단 행열과 동행하면서 투쟁현장을 생방송했던 제이컴퍼니 등 유튜버 진행자는 이날도 경찰들이 불법적으로 농민트랙터 행진을 방해한다면서 다른 유튜버와 접속자들에게 즉시 남태령으로 모여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그런데 방송을 탄지 30분이 지나갈 무렵부터 남태령역에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해 삽시간에 천 여명이 모였는데 대부분 20대 30대와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손피켓을 들고 질서정연하게 앉아서 “차빼라”를 연호하며 경찰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선창으로 ‘윤석열 체포하라’ ‘농민행진 보장하라’는 등 구호를 K팝에 맞춰 외쳤다. 시민들은 지쳐있는 농민들과 다르게 즐겁고 경쾌하게 리듬을 타며 노래와 구호하며 자유발언으로 동짓날 긴긴밤을 지킨 것이다.
그들은 28시간동안 발언을 유지했는데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윤석열의 잘못된 농정과 비상계엄이란 내란책동을 규탄했고 책임을 지고 퇴진할 것을 주장했다.
발언 내용을 소개하면 “이 길을 막고 있는 경찰분들에게 전합니다. 경찰 여러분들도 어릴 때 쌀밥과 김치 먹으면서 크지 않았습니까? 두번다시 쌀밥에다 김치를 먹고싶지 않은게 아니라면 차를 비키십시오. 차빼라 우리모두 끝까지 투쟁합시다 투쟁”(고2 여학생 발언)
“저는 백남기농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 올라왔습니다. 딱 8년 전 오늘 트랙터 몰고 오신 농민처럼 백남기 농민께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사망한 일 다들 기억하시나요? 국가권력에 의해서 시민들이 희생당한 일이 몇십년 전까지 거슬러가지 않아도 불과 8년전에 총도 칼도 아니고 물에 의해서 사람이 죽을수 있다는걸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봤습니다. 저는 사후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오늘 우리의 이모습을 백남기 농민께서 하늘에서 보고 계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늘밤이 지나도 우리 농민분들에 대한 연대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다른 약자분들에 대한 연대가 오늘과 같은 열기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대학생 발언)
우리는 지금 여기에 나와서 외롭지 않다는 걸 알았고 이렇게 나와 연대하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가 한두번 이러고 끝날 것 같습니까? 아니 우리는 이번에 배웠고 계속해서 광장에 나올것이고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며 함께 연대할 것입니다. 농민들이 소유한 것중에 가장 값있고 소중한 트랙터를 몰고 나왔듯이 우리들도 가장 소중하고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나왔습니다. 동시에 여기서 서로의 발언을 듣고 깃발을 보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노래하고 연대하며 동시에 나눔을 통하여 감동을 알았고 누구와 연대해야 될지 서로 인식했습니다(30대 여성)
밤 9시가 지나자 퀵배달 오토바이드가 남태령 고개로 시민들이 농민들과 연대하는 집회참석자들에게 나눔할 각종 먹거리와 보온용품 그리고 위생용품 심지어는 보온버스 3대까지 보내줬다.
특히 이번 남태령의 축제 같은 항쟁의 기적은 나눔의 기적도 있었지만 모든 이가 평등했고 존중 했으며 집회지만 딱딱하지 않았고 발언 역시 품격이 있었으며 윤석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도 주권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만 했다. 그러면서도 노래와 율동은 발랄 유쾌했고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빛났다. 학생들은 항상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뵐 때마다 는 늘 짠했는데 그런 농민들을 경찰이 길을 막고 있다는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21일 밤의 남태령의 채감 온도는 영하 8도였는데 바람 역시 세차게 불었지만 사랑과 투쟁의 열기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오후 늦게 경찰차가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치며 전봉준트랙터를 앞세우고 남태령고개를 넘어갔다. 전봉준 트랙터가 130년 전 선배 농민들이 넘지 못했던 한양성 용산궁앞까지 행진한 것은 오로지 응원봉을 들고 함께해준 시민들이다. 또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은 물론 민주노총과 시민단체의 활동가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농민들은 5박6일 투쟁에서 피곤함도 잊은 채 지난 28시간 동안 직접 체험한 남태령 천국을 기억할 것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전봉준투쟁단 참가자 김희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