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토요일, 저는 서울 북촌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주변 윤석열 탄핵 시위가 한창인 곳을 조금 비켜서, 30년 지기 대학 동창들과 ‘핫플’이란 곳에서 브런치를 먹고, 근처 갤러리를 들려 연말 분위기를 내보려 노력 중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인지라 두서 없이 수다를 늘어 놓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집회 웅성거림이 연신 신경이 쓰였습니다. 두 달 전에 잡은 연말 모임이 이리 어수선한 내적 갈등을 겪는 자리가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12월 22일 일요일 아침 전날의 피로도 풀 겸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마음 먹고 느긋하게 잠옷 바람으로 집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50대 중년 여성으로 갱년기보다 더 무서운 게 계엄이라는 것을 실감한 12·3 이후로 하루하루가 그냥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진시민연대 단톡방에 올라온 남태령 농민집회 지원 요청 소식은 아직은 일요일 휴식이 사치라는 것을 일깨우는 듯했습니다. 남태령으로 와달라는 콜링이 어제 내내 느꼈던 마음의 빚을 각성시킨 듯 주섬주섬 옷을 껴입게 했습니다.

12.3 계엄의 밤에 달려간 시민들이 없었더라면…. 오만가지 생각은 이 상상 앞에 다 무력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분의 농부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한 승용차로 남태령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남태령에서 밤을 새울 수도 있다는 긴장감 감도는 말씀, 과거 집회에서는 경찰에 끌려간 적도 있다는 얘기 등을 듣다 보니 심상치 않은 집회에 겁도 없이 따라나선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이분들이 그간 얼마나 외롭게 투쟁해왔고 관심받지 못했는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갈수록 오르는 경작 비용과 소득 감소 그리고 식량주권과 관련된 정부의 무책임한 행정 등으로 농민들의 좌절과 분노는 극에 달한 듯 보였습니다.

남는 아파트는 건설사를 대신해서 몇조의 세금을 퍼부어 사주면서 국민의 먹거리인 양곡에 대한 대책은 왜 이리 허술하고 야박할까요? 농민들이 힘없고 만만해 보여서 그런 게 아닌가? 함께 탑승한 네 사람은 앞다투어 불만을 성토했습니다.

드디어 오후 2시 30분쯤 흩어져 남태령 차가운 바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찰은 차 빼라!”, “윤석열은 빵 빼라”가 메인 구호였고 둘러보니 놀랍게도 농민분들과는 가장 어색한 조합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 천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분들이 번지수를 잘못 알고 모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1990년 초반 대학 때부터 여러 종류의 집회에 참여해 보았지만 이런 조합은 처음이었습니다. 각양각생의 응원봉, 여느 집회보다 한 키 정도 높은 카랑카랑한 구호와 떼창하는 K팝 노래들. 그리고 앞에 놓인 경찰 차벽은 뭔가 낯선 풍경이었지만 울려 퍼지는 젊은이들의 발언은 단호했습니다.

“합법한 농민집회를 앞뒤 차벽으로 막고 서울 진입을 막는 것은 위법이고 국민을 지킬 의무가 최우선인 경찰로서 부끄럽지도 않냐! 국민에게 총부리는 겨눈 내란범은 따듯한 관저에서 모셔놓고 왜 농민들은 영하 7도 차가운 땅바닥에 방치하며 생명을 위협하는가! 경찰들에게는 누구 편이냐며 쏘아 붙이는 대신 농민들에게는 그동안 관심 쏟지 못한 것을 사죄하고 지금이라고 힘을 보태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앉은 앳된 젊은 여성은 틈틈이 책을 읽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어렵다는 ’코스모스‘라는 책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우주가 남태령을 도왔나보다 저 혼자 소설을 써 봅니다.

4시 30분경 드디어 경찰 차벽이 홍해가 갈라지듯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농민집회 이래 최초의 트랙터 서울 입성을 이뤄낸 역사적인 날이었다고 합니다. 한남동 관저 근처에 도달한 트랙터 안에서 손을 연신 흔들던 농민분이 웃으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정말 뭉클하였습니다.

정말 동화 같은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선결제로 김밥과 떡 음료 등이 넘쳐 권하는 손길을 몇 번 거절하고, 핫팩은 마음껏 가져가도 남아돌고, 빨간 난방 버스는 언제든 오라고 손짓하고, ‘고양이 발바닥 협회’ 등 귀염뽀작한 깃발들이 나부끼고 아이돌 음악에 맞춰 구호도 외치고 춤은 주지만 자리는 절대로 떠나지 않는 젊은 그들이 없었더라면 남태령은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

다시 한번 이 나라의 위대한 시민들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대하여 따듯한 세상을 열어가는 현장에 우연히 용기를 내 함께한 나 자신 또한 칭찬하며, 오랜만에 숙면을 들게 해준 그날 남태령의 젊은이들 그리고 모든 농민분께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