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마비로 다리 길이가 다른 아버지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건축 현장에서 막 일을 하셨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과 하교하던 길 앞서가던 아이들은 모래 지게를 지고 일하는 절름발이 아저씨를 흉내 내며 낄낄거렸다. 나의 아버지였다. 나는 차마 아버지를 부르지도 다가가지도 못하고 모르는 척,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빠져나갔다. 아버지가 나를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는 모른다. 나도 학교에서 아빠를 보았노라고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을 때 어린 날의 내가 모른 척 한 아버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장애를 가지고도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경제활동을 하며 자식을 키워 낸 대단한 분인데 난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것 같아 죄송하고 가슴이 아렸다.
그 시절 아버지는 매일 술을 드셨다.
어른이 된 내가 “아빠 젊을 땐 왜 그리 술을 드셨어?”하고 물으니 “술 안 마시고 일 할 수 있간? 몸이 아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술이라도 마셔야 모래 지게, 벽돌 지게를 지고 올라가지. 술 안 마시곤 못 견뎠어.”
그렇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마신 술은 진통제와 같은 것이었다. 불편한 다리로 무거운 모래 지게를 지고, 벽돌 지게를 지고, 삶의 무게를 지고 견디게 해준 진통제. 그래서 아버지를 못 본체했던 그 날이 더 미안해지고 죄송스럽다. 부모의 장애는 나를 더 어른스럽고 더 조숙한 아이로 자라게 했다. 그러나 부모의 장애가 결코 결핍만이 아니었음을 이제 나는 안다.
성인이 되고 자연스레 장애아 교육, 장애인의 삶에 관심과 애정이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육교사로 취업하며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이 장애인 대상 봉사였다. 첫 봉사에서 만난 장애인단체 회장이 바로 나의 남편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 온 세상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세상, 더 편리한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냐는 훈남 회장님에게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아동들의 나들이 행사를 주최했던 회장과 봉사자인 내가 만나 5년을 연애하고 함께 산 지 벌써 20년이다. 나의 삶 가운데 장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가 됐다. 가족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삶 가운데 부딪혀 살아가며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됐다. 그러다 2007년 장애아전문 어린이집 운영자 공고에 응모하고 선정되며 지금의 하람어린이집을 개원하게 됐다. 장애아전문 어린이집이라는 특수성으로 편견과 선입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우여곡절 많은 일들도 겪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묵묵히 아이들과의 길을 걷고 있다. 장애아전문 어린이집의 원장이 되고 나서 난 내 부모의 어린 시절을 보듬는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 치료가 있었다면 우리 부모님이 좀 더 나은 삶의 질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또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볼 때 남편의 어린 시절을 보듬는다. 중도장애인인 그가 따스한 교사들을 만나 좀 더 수월하게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며 세상과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었다면..또 장애인이 된 아들을 피눈물을 흘리며 안타깝게 여겼던 시부모님을 보듬는다.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 힘든 과정에 누군가 도와주었다면 좀 덜 아팠을까...
어린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는 우리 원의 부모들은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소중한 자녀의 장애발견과 진단은 충격이자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부정하고 회피하길 반복하다 결국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힘든 과정 우리는 그 과정을 좀 더 덜 아프게 또 누군가와 의지하여 나누며 함께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다. 장애아이들과 생활하며 소중한 것을 배운다. 아이의 작은 변화에 기뻐하며 온 교실을 뛰어다니며 자랑하는 선생님들과 매일 매일이 귀하고 감사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조금 느린들 어떠하랴? 또 조금 다른들 어떠하랴? 매일 매일 그 작은 아이도 제 삶에서 가장 큰 힘을 내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천천히 조금씩 자라더라도 분명히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도 감사하며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빛깔로 빛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사랑을 보낸다.
2025년 장애인의 날을 맞이 하며... 장애아전문 하람어린이집 원장 한정선.
그저 함께 걷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도 가장 큰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