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고대면의 한 스튜디오와 병원 세트장에서 총 20회차에 걸쳐 촬영됐다.
영화 포스터. 고대면의 한 스튜디오와 병원 세트장에서 총 20회차에 걸쳐 촬영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부터,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BTS뮤직비디오까지 최근 몇 년간 수많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당진시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이들 콘텐츠가 남긴 흔적은 시민과 관광객 누구도 마주하기 어렵다. 안내판 하나 없고, 촬영지를 알리는 표지조차 없다. 콘텐츠는 넘쳤지만 이를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행정의 시선은 여전히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드라마 한 편으로 지역 브랜드를 키우고, 한 장면의 포토존으로 수십만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하면 당진의 현주소는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일각에서는 “당진이 콘텐츠의 도시가 되기 위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드라마 15회 장면.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상가 건물에서 촬영됐다.
드라마 15회 장면.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상가 건물에서 촬영됐다.

촬영지는 ‘명소’가 될 수 있다

국내외 지자체들은 이미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를 관광자원으로 전환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를 관광자원으로 전환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는 곳은 순천 드라마촬영장으로 드라마 <사랑과 야망>, <자이언트>, <에덴의 동쪽> 등이 촬영됐다. 순천시는 촬영 세트를 원형 보존 후 전시 및 체험관으로 개방하고 있으며, 시대별 거리 재현으로 교육 및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또한 순천만국가정원과 연계해 종합 관광코스로 구성했다. 순천시의 연간 방문객은 70만 명 이상이며 지역 숙박·음식업이 활성화됐다는 평가다.

또한 경남 합천군은 영화·드라마 촬영지를 활용한 지역 활성화의 대표 주자다. 2004년 문을 연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일제강점기, 1960~80년대 서울 거리 등을 재현한 대규모 세트장으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암살>, 드라마 <각시탈>, <미스터 션샤인> 등의 명장면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테마파크는 단순히 세트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방문객이 시대 의상을 입고 직접 연기하거나,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할 수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매년 열리는 ‘합천 시네마페스티벌’은 배우·감독과의 만남, 단편영화 상영, 청년 영상인 워크숍까지 포함된 종합 문화행사로 성장했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합천군은 연간 60만 명 이상이 찾는 전국 최고의 드라마 관광지로 자리 잡았으며, 지역 상권의 매출 증대와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콘텐츠 촬영지를 관광자원으로 전환한 도시는 드라마 방영 이후에도 지속적인 홍보 효과를 누리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콘텐츠로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스틸컷(CJ ENM 제공). 해당 영화는 도비도 선착장과 KG스틸 석문공장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스틸컷(CJ ENM 제공). 해당 영화는 도비도 선착장과 KG스틸 석문공장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콘텐츠는 있는데… 활용은 전무

당진시도 콘텐츠 로케이션 장소로 인기가 높다. 최근 5년간 당진에서 촬영된 콘텐츠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폭싹 속았수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JTBC <알고 있지만>, MBC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TVING <방과 후 전쟁활동>, 영화 <젠틀맨>, <승부>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K팝 대표 아이돌 BTS의 ‘MIC Drop’ 뮤직비디오 역시 당진버스터미널에서 촬영됐다.

촬영지 또한 지역 전역에 고루 분포돼 있다. 도비도 선착장, 대호방조제, 삽교호 관광지, 석문국가산단, 면천읍성, 합덕성당 등은 배경으로서도, 관광지로서도 활용 가치가 높은 자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당진시는 이와 관련한 관광 연계 정책, 촬영지 안내판, 해설 콘텐츠, 관광 코스 등 일체의 활용 계획은 전무한 상태다.

당진시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을 통해 지역 내 드라마 영화 등 촬영 제작을 최대 60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라며 “당진시가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닌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제작비 등을 지원하고, 향후 이에 대한결과를 전달받고 있다”고 말했다. 즉, 시 행정에서는 지역 내 드라마나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것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구조는아닌 것.

또 다른 관계자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위해 행정에 협조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시 행정에서 이를 인지하거나 알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방영된 이후 당진에서 촬영되었음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찍고 떠나는 도시”… 기회 놓치는 당진

지역 주민들은 “최근 몇 년간 당진이 콘텐츠 촬영지로 인기가 많아지며 곳곳에서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하고 있는 현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전체 분량의 80% 이상을 당진에서 촬영했고, 영화 <승부>는 고대면 세트장을 중심으로 20회차 이상 장기간 촬영됐다. 그러나 시민이나 관광객이 그 흔적을 체험하거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당진시 관광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는 이와 관련한 관광테마나 활용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다.

순천이나 합천처럼 세트를 보존하거나, 촬영지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고, 지역 해설사를 양성하는 등의 조치는커녕, 어떤 콘텐츠가 당진에서 촬영됐는지에 대한 공식적 정리조차 없다.

특히 삽교호 관광지처럼 다수의 작품이 반복적으로 촬영된 장소는 MZ세대 SNS 마케팅에 최적화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포토존, 안내, 콘텐츠 연계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행정조직 간 협업의 부재다. 드라마·영화 촬영을 유치한 부서, 관광지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 등 관련 기관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각 부서가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역할을 회피하면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지역발전 전략은 체계 없이 흩어지고 있다.

정책의지 없이 ‘콘텐츠 도시’ 없다

지역에서는 이러한 기회를 살려 이제는 명확한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지역 콘텐츠를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당진시 차원의 공식계획 수립과 촬영지를 망라한 관광지도 제작, 해설 콘텐츠 구축, 포토존 조성, 지역 상권과 연계한 관광상품 구성 등은 타 지자체에서도 효과를 입증한 방식으로 검토해 볼만하다고 피력했다.

지역의 문화·관광 분야 한 관계자는 “현재와 같이 무대는 빌려주고, 무대가 끝나면 모든 흔적이 지워지는 방식으로는 당진이 결코 콘텐츠 도시가 될 수 없다”라며 “수많은 콘텐츠가 머물렀던 도시는 그 흔적을 지킬 때에만 살아 있는 기억이 된다. 드라마·영화 촬영장소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화산업과 지역경제를 동시에 살릴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으로, 행정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략적 접근 필요

국내외 지자체들은 이미 드라마와 영화촬영지를 관광자원으로 전환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용인 드라마월드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한류 콘텐츠 기반 체험형 테마파크로 조성했지만, 콘텐츠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조기 폐쇄됐다. 수익성보다 전시 중심 구조로 지속 불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는 콘텐츠 다양성 및 지속성 부족, 초기 기획 부족이 원인이라는 평가다.

또한 영덕 강구항 세트장의 경우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촬영해 드라마 인기에 편승해 관광객 유입은 일시적으로 증가했으나, 세트장이 방치돼 유지관리 실패와 지역민과의 협업 부족, 관련 산업 연계 부재 등으로 실패 사례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지자체들이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를 단순한 배경 공간이 아닌, 체험형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며 지역활성화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라며 “콘텐츠 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촬영지 성지순례’는 국내외 관광객 유치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이 기회를 지역 브랜딩과 산업 육성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단지 찍고 떠나는 장소’였던 드라마·영화 촬영지가 이제는 지역 경제와 문화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자신만의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지역 특색을 살린 관광 모델을 개발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당진에서 촬영된 주요 드라마 및 영화

△오징어 게임 (2021, 넷플릭스) : 참가자들이 섬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무진항’은

실제로 당진의 도비도 선착장에서 촬영됐다. 또한 대호방조제도 배경으로 활용됐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022, ENA) : 극 중 합덕고등학교가 등장하며, 실제로 합덕고등학교에서 촬영이 이뤄졌다.

△알고 있지만 (2021, JTBC) : 삽교호 관광지 내 함상공원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하이드 지킬, 나 (2015, SBS) : 삽교호 관광지에서 주요 장면이 촬영됐다.

△태양 속으로 (2003, KBS) : 삽교호 관광지에서 일부 장면이 촬영됐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2025, MBC) : 전체 분량의 80%가 당진에서 촬영됐으며, 당진시의회 도서관, 롯데시네마타워 앞 육교 등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방과 후 전쟁활동 (2023, TVING) : 삽교호 관광지에서 주요 장면이 촬영됐다.

△폭싹 속았수다 (2025, 넷플릭스) : 극 중 주요 배경인 ‘금은동이네’ 가게는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인근 상가 건물을 세트로 활용했다.

△승부 (2025, 영화) : 고대면 세트장과 병원 등에서 총 20회차에 걸쳐 촬영이 진행됐다.

△오늘의 연애 (2015, 영화) △인천상륙작전 (2016, 영화) △사랑의 불시착 (2019, tvN) △단, 하나의 사랑 (2019, KBS) △젠틀맨 (2025 예정, 영화) △MIC Drop (2017, BTS 뮤직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