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설교도 AI가 대신하는 거 아니야?”라는 농담 섞인 말을, 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목회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들었다. 본문만 정해주고 AI에게 설교문을 작성하게 했더니, 신학적 깊이나 역사적 배경은 부족했지만 글의 흐름과 문장 구성은 놀랄 만큼 매끄럽고 완성도가 높았다고 했다.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 뒤에 깔린 묘한 불안감은 오래 남았다.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온 AI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신문을 펼쳐도, TV 뉴스를 켜도 AI 관련 소식은 매일같이 쏟아진다. AI가 신문 기사를 쓰고, 고객 상담을 대신하고, 병원에서는 진료 기록까 지 AI가 자동으로 요약한다는 뉴스도 들린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속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일까. 당진 시내 이곳저곳을 걷다 보면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든다. 반짝이는 새 건물들 사이로 여전히 남아 있는 오래된 간판들, 낡은 벽,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 그 곳엔 단순한 풍경 이상의 것이 있 다. 그 공간을 채우며 살아온 사람 들의 이야기, 웃음과 눈물, 버티고 견뎌온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누군가의 말투와 문장 습 관까지 학습할 수 있다지만, 그 골목의 냄새와 오래된 간판에서 느껴지 는 세월의 무게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 자영업하는 친구와 좁은 사무실에서 나누는 컵라면 한 끼, 그 안에 담긴 우정과 위로까지 AI가 기록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목회 현장도 마찬가지다. 주일마다 만나는 성도들의 표정과 눈빛만 보아도 그들이 안고 있는 자녀 문제, 경제적 어려움, 병상에서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그저 곁에서 말 없이 손을 잡아주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이 단순한 사역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AI로 대체할 수 있을까? 데이터로 저장하거나 자동 요약할 수 없는, 사람만의 영역이다.

지역신문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어느 마을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는지, 어느 골목에 새로 문을 연 가게 가 있는지, 지역민의 애환과 자랑하고 싶은 미담은 책상 앞에서 모니터 만 바라본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발로 뛰고, 현장에 서 직접 보고 듣고 공감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이야기’가 된다.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AI는 더 많은 자리에서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사람의 일을 대신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세심하게 돌보고 섬기는 일,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사람 만이 눈빛과 온기, 침묵 속의 떨림 까지 담아내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우리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 의 마음으로 세상이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공감과 배려, 기다려주는 인내와 함께 울어주는 눈물은 아무리 발전된 인공지능이라 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언어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 지 말아야 할 가치는 바로 그런 ʻ마음의 전달ʼ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필요 하다. 그 작은 동행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이 아닐까.

당진시대가 앞으로도 계절 따라 바뀌는 지역의 색깔과 소리, 골목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 그리고 산업도시 당진의 숨결을 ‘사람의 언어’로 꾸준히 전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