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평중학교 입구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축구부 건물이 나온다. 그 안 급식실에는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구부 선수들의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책임지는 유근숙 씨가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근숙 씨가 선수들에게 건네는 첫마디는 “밥은 먹었니?”다. 그는 때론 한 사람을 위해 죽을 따로 끓이고, 한약을 데우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함께 챙긴다. 선수들은 그를 ‘급식 아주머니’가 아닌 ‘어머니’라 부른다.
아들로 시작된 축구부와의 인연
1999년, 경상도가 고향이던 유근숙 씨는 당시 경기도 광명에 살고 있었다. 아들 백형도(41) 씨가 광명중학교 축구부 소속이었고, 유근숙 씨는 그 학교 축구부의 식사를 맡은 지 2년 정도 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신평중학교 축구부로 전학을 가게 됐다. 마침 신평중·고등학교 축구부에서도 급식을 맡을 사람을 찾았고, 유근숙 씨는 아들과 함께 당진으로 내려왔다.
아들이 신평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일을 그만두려 했지만, 축구부에서는 “어머니 없으면 안 된다”며 붙잡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신평중‧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안 먹으면 어쩌지, 탈이 나면 어쩌지”
유근숙 씨는 매일 같은 걱정을 한다. 뛰는 일이 많은 선수들이 혹여 식사 후에 속이 불편할까 우려한다. 그는 “시합이 있을 때는 고칼로리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소화가 잘되도록 소고기뭇국 같은 메뉴를 선택한다”며 “전학 온 선수들 중 10명 중 5~6명은 탈이 날 정도로 물갈이를 하는 선수들이 많아, 그럴 땐 따로 죽을 끓여준다”고 말했다.
또한 한약에 각자 이름을 적어 맡기면 끼니마다 데워준다.
“전자레인지로 데우면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어, 찌개 끓이는 곳 모서리에 두고 데워요. 중간중간에는 너무 뜨거워질까봐 확인하고 다른 데로 옮겨줘요.”
유근숙 씨는 선수들의 취향도 세심하게 기억한다. 탕수육 하나에도 간장에 찍어 먹는 아이, 소스에 찍어 먹는 아이, 케첩을 찾는 아이가 있어 소스만 10가지 넘게 준비한단다.
그는 “아이들이 밥 먹으러 내려오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며 “음식이 모자라진 않을까, 준비 못 한 게 있진 않을까 매일 긴장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마음도 챙겨
유근숙 씨는 밥만 챙기는 게 아니다. 선수들의 눈빛을 보고 오늘 기분이 어떤지 살핀다.
“경기에서 많이 뛰지 못하거나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은 눈도 잘 안 마주치려 할 때가 있어요. 그런 선수에겐 ‘밥 많이 먹고 힘내라’, ‘오늘도 멋지더라’는 말을 더 자주 건넵니다.”
또한 축구부 선수들의 경우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어려워 유근숙 씨가 휴대전화를 빌려주며 부모와 전화하게 해주는데, 그때 선수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유난히 자주 전화를 거는 아이가 있으면 ‘뭔 일 있구나’ 싶죠. 그때 아이에게 물어보면 ‘어머니, 다른 데로 가야 할 것 같아요’라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요.”
한 아이는 다른 학교로 떠나기 전 유근숙 씨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마음이 쓸쓸할 땐 어떡해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이에 그는 “마음 풀릴 때까지 그냥 울어. 나도 운다. TV 보다가도 울어”라고 말해줬단다.
과거엔 축구가 하기 싫다며 도망가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는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날 도망가냐”, “빨리 오니라, 삼겹살 먹는다”라는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안 받으면 다른 사람 핸드폰으로도 걸어 설득한 일도 있다. 나중에 그 아이들이 “어머니 문자 보고 한참 웃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스승의 날, 한 선수가 유근숙 씨에게 “축하드려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냐”고 하자 그 선수는 “저한텐 어머니가 스승이에요”라고 대답해 한참 웃었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가끔 졸업한 선수들이 '어머니 밥 먹고 싶다'는 연락을 보내오기도 해요. 그때마다 언제든지 오라고 해요.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축구부에서 저를 믿어주는 게 느껴져요. 고마울 뿐이죠. 앞으로도 선수들이 건강하게 밥 잘 먹고, 좋아하는 운동 마음껏 했으면 좋겠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저도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미니인터뷰]
김성진 신평중학교 축구부 감독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제가 학생 시절 축구부 선수로 활동할 때도 어머니는 계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늘 선수들을 먼저 생각하고 챙겨주세요. 정이 많으시고, 뭐든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해주시려고 하는 분입니다. 동문 사이에서는 ‘지도자는 없어도 괜찮지만, 어머니가 없으면 축구부는 해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졸업생이나 학부모님들이 학교에 무슨 일로 오면 저희 지도자보다 어머니를 먼저 찾기도 합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젊음을 이 축구부에 쏟아주셨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