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때가 되자 용연1통 마을회관 부엌에서는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탁자 위에 놓인 나물 반찬과 김치가 소박하게 담겨 있고, 집에서 손수 만든 나물반찬과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가 입맛을 돋운다. 평범한 시골 마을의 일상 같지만, 이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이다. 20여일째 이곳에서 먹고 자는 수재민들의 식탁 풍경이다.
평소 1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20여일째 함께 식사를 해결하고 있지만 몇몇 주민들은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거나 물에 잠긴 집과 주변을 청소하느라 끼니때를 놓쳤다.
이금자 용연1통장은 수시로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마을회관에서 기거 중인 주민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20여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주민들이 불편함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세세하게 살피고 있다.
“아직도 그날 밤을 생각하면 아찔해요. 용연1통이 침수 위험지역으로 지정됐기에 뉴스에 귀기울이며 상황을 지켜봤어요. 그러다가 역천이 범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주민들에게 전화를 돌렸어요. 특히 독거 노인분들의 안전이 중요했거든요.” 이금자 통장의 발빠른 대처로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날 새벽, 마을에 물이 차올랐다
지난달 17일 새벽 1시.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역천의 물은 눈에 보일 정도로 불어났다.
허순(79) 씨는 그날 밤을 잊을 수 없다. 아들까지 4대째 이 마을에 뿌리내린 그의 집은 지금 텅 비어있다. 창문 높이까지 차올랐던 물이 빠진 자리엔 축축한 벽과 갈라진 바닥만 남았다. 살림살이는 물론 축사도, 농기계도, 벼 건조기부터 어느 하나 성한 것이 없다. 심지어 숟가락과 젓가락 하나 건진 것이 없다.
“비 온다는 소식에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며 지켜봤어요. 새벽이 되니 물이 불어나는 게 눈으로 보여요. 80년 가까이 여기 살았는데, 물이 역천을 넘어 이쪽 도로를 넘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막 넘더라고.”
역천 인근 주유소까지 내려가 상황을 지켜보던 허 씨는 물이 주유소 건물까지 차오르자 주유소 옥상으로 대피할 준비를 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비가 잦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처참했다.
“소가 40마리 있었는데, 물이 어깨까지 차올랐어요. 입만 위로 내밀고 숨 쉬고 있더라고. 다행이도 한 마리만 죽었어요. 송아지가 헤엄치다가 난간에 발이 끼어서….”
지금은 웃으며 그때 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집에 들어가면 뒤숭숭하고, 나오면 오히려 맘이 편하다”며 “들어가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보이니까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창문에 매달린 3시간
“창문 틀을 3시간 넘게 붙잡고 있었대요. ʻ나 아직 더 살아야 돼ʼ하면서요.”
이금자 통장이 들려준 이웃의 이야기다. 마을의 한 주민은 불어나는 물을 피해 창문틀에 매달려 있었다. 119 구조대가 보트로 구조할 때까지 3시간. 가슴까지 차오른 물 속에서 그가 붙잡은 것은 창틀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였다. 구조되기까지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마을 주민들은 그가 구조되자 일단 맑은 물로 씻겼다. 몸에는 온통 흙탕물과 쓰레기가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제 그날을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

31가구의 재앙 - 모든 것을 잃어
용연1통에서 완전 침수된 집은 31가구다. 주민들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잃었다.
“숟가락 젓가락조차 없는 실정이에요. 있을 때는 그냥 있는 거 쓰니까 모르는데, 지금은 뭐 하려고 하면 다 사야 해요.”
김영숙(76) 씨는 53년간 살아온 집에서 건진 것이 하나도 없다. 냉장고, 세탁기, TV, 이불... 평생 모은 살림살이가 한순간에 쓰레기가 됐다. “싼 걸로 산다 해도 전자제품만 100~200만원이에요. 수십 년 동안 하나둘 모은 건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사야 해요.”
그는 “부엌 수리 이후 쓰려고 포장도 벗기지 않은 전자레인지도 물에 잠겼다”며 “진작에 사용할 걸, 아끼다 뭐 됐다”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주민들은 이번 수해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서산 고풍저수지에서 수문을 열었대요. 거기서 내려온 물이 역천으로 왔는데, 때마침 만조와 겹쳤어요. 당진천에서도 물이 밀려오니까 역류한 거죠.” 더 큰 문제는 하천 관리 부실이었다. 역천변에 지어진 건축물이 병목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한 생태하천 수변 공사로 수로는 좁아졌고 여러 상황이 겹쳐 범람했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힘낼 수 있어
그나마 이들이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다.
수해 발생 후 매일 100명씩 자원봉사자가 왔다. 현대제철, 해양경찰, 소방서, 새마을회 등. “자원봉사자들이 아니면 수습을 못했을 거예요. 농촌이 다 고령화됐잖아요. 물 먹은 가재도구 끄집어낼 힘도 없어요.”
최영미 부녀회장은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그나마 빨리 수습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현대제철에서 온 70~80명의 직원들이 큰 도움이 됐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니까 일이 빨랐어요. 부모 따라온 아이들도 있었는데, 엄마 따라서 일 돕는 모습이 기특했죠.”
허순 씨도 친구 부부와 이웃, 가족들의 도움으로 2000여평이 넘는 축사와 집, 농기계 창고 등을 수습할 수 있었다.
허 씨의 부인은 “그래도 그동안 잘 살아 왔는지 남편 친구 부부가 일주일 넘게 찾아와 수해복구에 나서줬다”며 “온몸에 흙탕물을 뒤집어 쓰고 무더운 날씨에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내 일처럼 나서줘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20여일이 지난 지금, 아직도 마르지 않는 집
수해 이후 20여일이 지났지만 집은 여전히 축축하다. 일부 주민들은 물에 잠긴 집에 장판 하나 깔고 집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
“벽이 위까지 물이 찼으니까 마르는 데만 몇 달 걸려요. 그냥 일반 물이 아니고 미세한 진흙이 다 끼어서 잘 안 말라요.”
그래도 이곳 마을회관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뭐 어쩌겠어요. 천재지변으로 이렇게 된 거.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 탓하겠어요. 그냥 헤쳐 나가자, 이렇게 사는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