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숭아, 살구, 자두, 체리, 블루베리 등 제철 과일이 색색이 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 7월~8월에 열리는 복숭아는 향긋한 향기와 새콤달콤한 풍미로 보고만 있어도 군침이 돈다. 복숭아 철이 되면 어릴 적 친정집 작은 과수원이 떠오른다.
살이 올라 크고 토실토실한 복숭아는 가지가 끊어질 정도로 많이 열려서 축 늘어져 땅에 닿았다. 복숭아 빛은 예쁜 엄마의 볼 같았다. 복사꽃처럼 뽀얀 단 냄새를 풍기던 복숭아는 살을 발라내자 ‘옹골진’ 씨만 남았다. 어혈을 없애주는 대표약재 ‘도인’이다. 한약방을 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복숭아씨를 햇볕에 바싹 말려 한약재로 사용했었다.
어릴 적 복숭아는 시큼한 맛으로 어릴 적 나에게 기억되는 특별한 맛이 있다. 초록색 복숭아가 노랑으로 변하기전에 붉은색이 몇 줄 그어지면서 익어 갈 때에 신맛이 최고조에 달한다. 나에게 복숭아는 덜 익은 떫은맛이 익기 직전의 새콤한 맛이다. 붉게 익기까지 기다리기도 전에 입에 당겨서 먹었었다.
며칠 전 며느리가 복숭아를 사와 깎으면서 말했다. “작년에 복숭아를 못 먹었어요. 임신 중이라서 먹으면 복숭아털이 아기에게 알레르기나 아토피가 생긴다고 해서 먹고 싶은 복숭아를 못 먹었거든요.” 요즘은 임신 중에 혹은 갓난아기에게도 안 좋다고 해서 가리는 것도 많다.
아주 오래전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의 올캐 언니는 임신하여 신 것이 먹고 싶어 덜 익은 복숭아를 따먹으러 복숭아 과수원에 몰래 개구멍으로 들어갔다가 시동생과 얼굴이 마주쳐서 서로 민망해져서 얼굴이 빨개졌었다고 했었다.
그 옛날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씻지도 않고 칼로 깎아 먹었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옥양목 앞치마에 쓱쓱 문질러 주시던 복숭아는 털이 묻어 있어도 맛있다고 먹었었다. 조카는 복중에 복숭아를 먹었어도 아토피나 알레르기는 물론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다.
주전부리가 궁했던 시절, 단 음식이 귀했던 시절, 간식거리기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먹을거리가 지천인데 내 혀에서는 그때 그 맛이 느끼고 싶어지는 것이 왜일까?
아버지께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이슬이 맺혀있는 풀을 뽑으셨다. 담장 안 뒤란 장독대 옆에는 갖가지 채송화, 봉숭아, 금송아가 피어 있고, 담장아래에는 달맞이꽃이 밤이 되면 노랗게 활짝 피었다가 낮이 되면 오므라져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집 뒤 과수원에는 복숭아, 자두, 포도, 사과, 배, 딸기, 참외, 수박까지 끊이지 않고 과일이 열리고 있었다. 과수나무는 전지가위로 가지치기를 잘하지도 않았었다. 당장 많이 열려야 여러 식구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멋대로 자란 복숭아나무는 다닥다닥 너무 많이 열려서 나뭇가지가 찢어지거나, 척 늘어져서 과실이 땅에 닿아 흙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복숭아 끼리 달라붙어 미처 자라지 못해 찌그러진 복숭아도 맛있기만 했다.
작든 크던 멋대로 자라 시큼한 덜 익은 떫은맛도 있었지만 조금만 달달해도 무엇이나 맛있던 시절이었다. 빨갛게 익기까지 오래 기다리기에는 너무 길었고 조급했었다. 그리고 복숭아가 익기 시작하면 금방 물러서 한꺼번에 큰 바구니에 가득 찼다.
더운 여름날 차가운 펌프 물을 퍼서 씻으면 시원해졌다. 손이 크셨던 어머니는 무엇이든 풍성하게 채워 주셨다. 우리는 모두 둘러 앉아 복숭아를 먹었다. 딱딱한 복숭아는 그런대로 아삭아삭 소리내며 먹고, 말랑한 복숭아는 껍질을 손으로 벗기며 단물을 빨고 흘리면서 맛있게 먹었다. 가슴에 담아놓은 달콤한 추억은 아무리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윤주정 작가는?
- [계간 시선] 수필 등단<2014>, 한국수필가 협회 회원
- 허준백일장 수상, 당진 나루문학상 수상.
- 수필집:[새벽잠을 깨우는 소리]
- 공저 : 한국수필가협회 50주년 기념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