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당진2동 사기소1통은 사기소(沙器所)라는 지명 자체가 ‘그릇을 만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 마을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배산 자락 아래 역천이 흐르는 사기소1통은 현재 90여 가구 197명이 거주하는 작은 산골 마을이다. 4개 반으로 구성된 이 마을의 70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80%에 달한다.

고려 말 왕족이 시작한 도기 제작 전통

사기소1통의 역사는 고려 말 조선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낙서 통장은 “고려 말 조선초에 일부 고려 왕족이나 정승이 성을 숨기고 이곳에 내려와 그릇을 구워서 연명했다고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마을 곳곳에는 도기 제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당초등학교 앞에는 길이 30m, 폭 10여m에 달하는 대규모 가마터가 있었다고 마을 주민들은 설명했다. 지금도 논을 갈다 보면 빨간 황토색 흙과 함께 깨진 그릇 조각도 나온다고.

마을에는 사기소와 관련된 다양한 자연마을 이름이 전해진다. ‘텃굴(基谷)’은 사기소 터가 있던 곳이고, ‘점말(店村)’은 옹기점이 있던 중심 마을이다. 이처럼 마을 전체가 도기제작을 중심으로 형성됐음을 알 수 있다.

지명에 담긴 마을의 자연환경

사기소1통 주변 지명에는 마을의 자연환경과 전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 통장은 “청산 쪽은 밤이 많아서 ‘밤메이’, 오른쪽에는 ‘외골재’, ‘개구리봉’, ‘맵산골’이 있다”며 “매와 학이 서로 개구리를 잡아먹으려는데 뒤에서 뱀이 견제하는 형상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소개했다. 이배산 기슭에는 큰 소나무로 이루어진 서낭당도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소나무가 죽고 터도 사라졌다고 한다.

과거 사기소1통은 도기 제작과 함께 농업도 병행했다. 하지만 산골 지형 특성상 농토가 부족해 대부분 소농 형태였다.

이승진 노인회장은 “어렸을 때는 소를 타고 풀을 뜯기러 다녔고, 중말천에서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여 먹었다”며 “그때는 투망한 번 치면 물고기가 한 바구니씩 잡혔다”고 회상했다.

마을에는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도 활발했다. 농악패가 있어서 마을 행사 때 풍물을 쳤고, 상여를 보관하는 공간도 따로 있었다. 농사철에는 품앗이를 통해 서로 도우며 논을 갈고 모내기를 했다.

장날과 산길, 옛 교통로의 흔적

과거 사기소1통 주민들은 당진장과 면천장을 오가며 생필품을 구입했다. 이승진 노인회장은 “5일장이라 당진 장날은 당진으로 가고, 면천 장날은 면천으로 갔다”며 “모두 걸어서 다녔는데 산길로 1시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10살 때부터 할머니, 어머니를 따라 고탁가마를 등에 지고 면천장에 갔다”고 이승진 노인회장은 회상했다. 현재 이 산길들은 고속도로 공사로 대부분 사라졌다.

한글교실에서 꽃핀 할머니들의 재능

코로나19 이전 마을에 한글 선생님이 와서 할머니들을 가르쳤는데, 할머니 10여 명이 직접 쓴 글과 그림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다.

성 통장은 “할머니들이 늦은 나이에 한글을 깨쳐서 고맙다며 책을 나눠주던 날이 완전히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 같았다”며 “손자 손녀들에게 다 한 권씩 기념으로 주고, 마을 창고에서 출간 기념회도 성대하게 했다”고 회상했다.

현재 사기소1통의 마을 공동체는 부녀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순정 부녀회장은 “일주일에 3번씩 모여서 함께 밥을 먹고, 목요일마다 요가 선생님이 와서 요가교실도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남성들의 경로당 활동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반면, 여성들은 14명 정도가 꾸준히 모여 활동하고 있다. 부녀회 활동을 통해 마을이 활기를 찾고 있다.

박순정 부녀회장은 “서로 다투는 일 없이 협력해 도우며 지내고 있다”며 “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함께 동참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농업 기반 약화와 소득 감소

과거 꽈리고추, 달래 등으로 소득을 올렸던 사기소1통의 농업은 현재 크게 위축됐다. 고령화로 인해 생산량이 과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성 통장은 “예전에는 일주일에 6번 정도 가락시장에 농산물을 올려 보냈는데, 지금은 가끔 올라가는 정도”라며 “고령화와 농토 부족으로 농업 소득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귀농인들의 새로운 시각

20여 년 전 수원에서 이주한 한동우 3반 반장은 “이 마을도 둘레길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며 “이배산을 돌아 나오는 코스로 중간중간 볼거리를 만들면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부인의 갑상선암 치료를 위해 이주했다는 한 반장은 “공기 좋고 흙 냄새 나는 환경의 소중함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당진대산간 고속도로가 가져온 변화

2020년부터 시작된 당진-대산 간 고속도로 공사는 사기소1통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체 90여 가구 중 27가구가 수용됐고 이 중 22가구가 이미 마을을 떠났다. 나머지 5가구만 현재 마을에 재정착했다.

성 통장은 “국가사업이다 보니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마을이 반 이상 소멸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방음벽 설치 여부다.

서해안고속도로 건설 당시에는 마을에 방음벽이 설치됐지만, 이번에는 교회 뒤편에만 방음벽이 있다. 도로공사 측은 “시속 60km로 설계돼 방음벽 설치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수해로 이중고에 빠진 마을

설상가상으로 지난 7월 집중호우로 마을이 큰 피해를 입었다. 27가구가 산사태와 침수 피해를 당했고, 차량 20여 대가 폐차됐다. 일부 가구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살림살이를 잃었다.

성 통장은 “고속도로 공사로 인한 토사 유출과 가설 교량에 쌓인 쓰레기가 물의 흐름을 막아 피해가 커졌다”며 “책임 소재를 따져도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해 복구는 대부분 완료됐지만 지원은 미흡했다. “침수 면적에 따른 최소한의 지원만 받았고, 농기계나 기타 피해는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주민들의 미래에 대한 바람

사기소1통 주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현재 거주 주민들이 조용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성 통장은 “고속도로를 성토가 아닌 교량으로 건설해 마을 단절을 막고, 방음벽을 설치해 소음 피해를 줄여 주길 바라고 있다”며 “또한 공사 중 먼지와 발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저감 대책을 제대로 시행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승진 노인회장은 “공기 좋은 산골에서 외지 사람들도 많이 와서 살았는데, 고속도로 때문에 동네가 반으로 나뉘어 버렸다”며 “남아 있는 주민들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