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7일 새벽 4시, 당진시 우강면에 거주하는 논콩재배 영농법인 단장 염규백 씨는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집을 나섰다. 긴급재난방송이 울리고 대피령이 내려진 상황이었지만, 그가 가장 걱정한 것은 5만여평의 논콩밭이었다.
“막 폭우가 쏟아지는데 이게 심상치 않구나 싶어서 우선 콤바인과 트랙터를 고지대로 옮기려고 나갔어요. 그런데 물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불어나더라고요.” 염 씨가 도착했을 때 논콩밭은 이미 물바다가 돼 있었다. 8년간 쌓아온 논콩 재배 경험과 노하우가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정부 정책 따라 논콩 심었는데
정부는 쌀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전략작물 확대 정책을 추진해왔다. 논에 벼 대신 콩을 심게 권장한 것이다.
당진시도 이 정책에 적극 참여했다. 올해 502농가에서 520ha를 재배하고 있다. 염 씨도 정부 정책에 적극 호응해 올해 재배면적을 작년보다 2만평이나 늘렸다.
하지만 요즘 쌀 과잉으로 보관 문제와 가격 문제가 심각해지자 염 씨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8년 전부터 논콩 재배를 시작한 경험자로서 다른 농가들에게도 논콩 전환을 권장했다.
8년 경험도 하룻밤에 물거품
염 씨의 논콩 재배 경험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첫해에는 5000여평에서 완전 실패했다. 배수 문제와 파종기 어려움 때문이었다. 둘째해에는 50% 정도 성공했고, 세 번째 해 이후 4년간은 좋은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특히 작황이 좋았다. 6월 5일부터 파종을 시작해 가뭄이 오자 논콩이 최적의 성장 조건을 맞췄다. 침수되지 않은 지역의 논콩은 지금도 상당히 우수한 상태다.
“논콩은 가뭄을 안 타거든요. 올해는 정말 최고 좋았어요. 컨설팅 회사에서 와서 봐도 ‘여기서는 특별히 컨설팅할 게 없네요’라고 할 정도였죠.”

하룻밤 사이에 완전고사
하지만 7월 17일 집중호우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염 씨 개인 농지만 2만6000평이 완전고사했다. 그가 단장으로 있는 영농법인 전체로는 9만여평 중 5만평이 완전고사했다.
염 씨가 보여준 사진들은 참담했다. 푸르렀던 논콩밭이 진흙탕으로 변한 모습, 물이 빠진 후 누렇게 말라죽은 콩 잎사귀들이 처참한 현실을 보여줬다.
신리지역 전체로는 재배면적 10만평 중 8만평이 완전고사했다. 당진시 전체 논콩농가의 84%인 440ha가 피해를 봤고, 약 300ha는 완전고사한 것으로 예상된다.

재파종 비용만 1400만 원
더 큰 절망은 농작물재해보험 문제였다. 논콩 재해보험 가입 기간이 7월 25일까지였는데, 파종 후 출현율 80% 이상이 되어야 보험 가입이 가능해 출현 여부를 관찰하던 농가들이 시기를 놓쳤다.
염 씨도 7월 17일 폭우 당일에 보험을 가입했지만 ‘호우주의보 발령 시 보험 적용 불가’라는 약관 때문에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염 씨는 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 재파종을 결정했다. 종자값, 파종비, 약값 등 재파종 비용만 1400만 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재파종한 콩이 제대로 수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120-150일이 걸리는데 시기상 늦었기 때문이다.
“인재냐 자연재해냐”
염 씨는 이번 피해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리지역은 배수시설이 잘 돼 있어 300mm 폭우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곳이었다.
“수문이 3일 동안 안 닫혔어요. 역류가 계속 됐죠. 배수펌프장도 품어내는 만큼 유입되고, 기존에 있는 물은 적체돼 있고. 결국 삽교천 수위가 줄어들면서 자연적으로 배수가 된 거예요.” 그는 수리시설 관리 부실이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젊은 농업인들의 좌절
당진시 논콩농가에는 청년농업인 비율도 높은 편이다. 이들은 전 재산과 청춘을 걸고 농업에 뛰어든 상황이다.
염 씨의 며느리도 올해 당진 거주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콩 재배에 동참했다. 농어촌공사에서 임대해 준 2100평 중 600평은 우수한 상태지만, 나머지는 침수 피해를 입었다.
“젊은 사람들이 자기 독창적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데 이번 재해로 그 노력의 기반이 무너졌고 재기 가능성마저 위태로워졌어요.”
“의회에서도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진시의회 김봉균 의원이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최근 시의회 5분 발언을 통해 “정부 전략작물 확대 정책에 적극 협조한 논콩농가들이 예측할 수 없는 기후위기로 재난을 당했는데 그 모든 책임을 농민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했다.
김 의원은 “논콩농가에는 청년농업인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이들은 전 재산과 청춘을 걸고 올인한 상황”이라며 “이번 재해로 그 노력의 기반이 무너졌고 재기가능성마저 위태로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논콩은 정부가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논에 벼 대신 심게 권장한 품목인 만큼 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농가 모두가 실질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며 당진시의 보편적 지원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단순 지원을 넘어 근본 대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논콩작물의 재해 피해 원인을 분석해 근본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논콩은 습해 방지를 위한 배수 관리가 중요한데 당진시는 기반 시설이 미비한 상황에서 작물 재배만을 권한 격”이라고 지적했다.
김봉균 의원과 함께 같은 지역구인 김명진 시의원이 함께 노력한 끝에 당진시는 추경을 통해 지원책을 마련했다. 보험 미가입 완전고사 농가에게는 헥타르당 300만 원, 보험 가입 후 재파종 농가에게는 헥타르당 100만 원, 침수 피해 농가에게는 헥타르당 7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래도 계속할 것”
이런 상황에서도 염 씨는 논콩 재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벼농사는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해요. 하우스도 철거했어요. 내년에는 더 체계적으로 전국 1등 콩 단지를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려도 크다. “자꾸 세월이 가고 늙으니까 그게 걱정이죠.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기후변화 시대 농업정책 전환점
이번 당진시 논콩 침수사태는 기후변화 시대 농업정책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가 쌀 과잉 해결을 위해 논콩 재배를 권장했지만, 집중호우 등 기후재해에 대한 대비책은 부족했다.
특히 농작물재해보험의 사각지대 문제, 배수시설 등 생산기반 정비의 중요성,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업정책의 전면적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됐다.
염 씨는 “올해 같은 피해가 또 생긴다면 논콩 재배 자체를 포기하는 농가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정부 정책에 협조한 농민들이 절망하지 않게 근본적인 해법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