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이 사라지고 있다. 지명이란 말 그대로 땅 이름이다. 지명은 언제부터 혹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사용됐는지 아는 사례보다 모르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땅 이름은 조상 대대로 불러오며 발음도 변형되고 왜곡되고 각색되어 원 뜻을 알기가 어렵게 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 흔한 바위, 나무, 고개, 하천, 골짜기에도 말이다.

하지만 21세기 현재에 접어들어 지명은 등한시되고 있다. 아울러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으로 인해 지명이 잊히고 있다. 이미 기록에는 있으나 찾을 수 없는 지명도 있다. 도로 개설로 인해 혹은 건물 건설로 인해 골짜기가 사라지고 그 골짜기는 더 이상 본 지명대로 불리지 않아 본래의 이름을 아는 주민이 작고하면 고유의 지명을 알 길이 없어진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서는 도로명주소 체계로 인해 생뚱맞은 결과가 초래하기도 한다. 다른 지역까지 전개된 도로명주소가 다른 마을의 고유 지명까지 침범하고 원래 지명과 전혀 다른 지명이 도로명주소로 채택되어 혼란을 빚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게 포착된다.

게다가 현재 당진 지역에 산재한 지명들을 확인한다면 각 읍면에서 발행한 『읍지』, 『면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집필자의 바쁜 일정 혹은 권태로움 때문인지 엉뚱한 지명 혹은 실제로 주민들이 부르지 않는 지명이 많다. 더 나아가, 많은 지명이 누락되어 있고 옆에 병기한 지명의 위치마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설명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필자는 마을 조사를 진행함과 동시에 가장 신중히 조사,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 지명이다. 지명은 반드시 현지답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마을에서 나고 자랐거나 오래 거주한 주민들의 구전을 통해 지명을 특정해야 한다. 하지만 요새는 지번 주소라는 편리한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필자 또한 특정 지명이 어디인가에 관해 기록하는 동시에 그 지명의 주소를 특기한다. 이 작업을 병행하면 당장은 귀찮을 수 있지만 지번 주소가 변동되지 않는다면 후인들이 지명을 찾을 길은 열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진시청이 있는 곳은 토골이다. 또한 당진시청이 자리한 수청동에는 용머리, 자라머리라고 부르는 지명이 있었다. 수청리의 지명 유래는 수청골에서 유래된 것이다. 수청골은 현재 호반써밋 시그니처3차 아파트가 위치한 곳으로 이웃 마을인 시곡1통으로 넘어가는 서낭댕이 고개가 있는 곳이었다. 현재 ‘수청골’은 소멸하고 ‘안수청골’만이 남아 지명의 유래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수청동에 있는 일명 신터(신터미널, 신차부)도 구터(구터미널, 구차부)와 대조되는 지명으로 고착화된 사례이다. 2003년 현재 위치로 터미널(차부)이 이전하며 현재 진원타워 자리에 있었던 구터(구터미널, 구차부)는 지명으로 남고 그 일대를 지칭할 때 활용하고 있다. 이는 당진 원주민뿐만 아니라 이사 온 주민들조차 기존 주민에게 듣고 전래되어 20년 이상 유지된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지명의 유래를 명명백백히 밝힐 수 있는 합당한 사례이다. 그리고 현재 신터미널은 수청2통의 ‘아랫말’이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특이한 지명도 많다. 기지시리, 부곡리, 시곡동과 경계한 벼락산, 반촌1리의 반바지, 운산리, 창리의 갈매기산, 천의리의 고추봉, 시곡동의 요강산, 원당동의 배꼽산, 매산리의 빕식이, 상오리의 쪽주머리, 부곡리의 쇠대갈산 등이다. 똑같은 지명도 몹시 많다. 자개리, 상오리, 거산리, 유곡리의 서두물, 원당리, 율사리의 밤절, 초락도리, 고대리, 당산리, 통정리의 고잔, 읍내동, 채운동, 덕마리, 신석리의 대비뚝(제비뚝), 대덕동, 채운동의 가랑구지, 부곡리, 우두동의 거북산, 운산리, 대덕동의 삼형제바위 등이다.

특수한 지명도 많다. 중방리의 북창, 우두동의 북창, 당산리의 북창, 당진포리의 해창, 합덕리, 창리, 가곡리의 창말, 삼화리의 외창, 용두리의 사창말, 초대리의 새창머리 등은 과거 창고가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봉소리, 도곡리의 주막거리는 과거 주막이 있어서, 기지시리 비석미, 매산리 비석묘산, 삼봉1리, 창리의 빗돌거리는현재 비석이 있거나 있었기에 유래된 것이다. 또한 명산리의 서원머리(슨머리)는 조선시대 서원(書院)이 있었기에 유래했다.

안타까운 것은 행정 편의를 위해 지정된 지명으로 인해 오히려 원주민들이 입으로 부르던 토속 지명과 달리 행정 지명으로 점차 굳어지는 사례도 부지기수이다. 대표적인 예로 배미산은 아미산, 매산리, 부수리 돌팍산은 석화산, 가치내는 행담도, 신시리 큰애산은 어시산, 역내는 역천, 큰내내깔은 당진천, 용동내깔은 시곡천, 봉암산은 대덕산 등이 있다. 당연하지만 이보다 무수히 많다. 게다가 다음지도, 네이버지도 등에 표기된 지명을 절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필자가 지도에 표기된 지명을 학습 후 막상 현지 원주민들과 교차 검증을 해보면 전혀 맞지 않거나 다른 곳의 지명이 표기돼 있고 다른 곳에 지명이 표기돼 있는 사례가 너무 많다.

승선이, 염쟁이, 말미, 면계, 비방구지, 덕산촌, 손골, 구양삼, 안삼, 청룡뿌리, 봉대미산, 경찰서다리, 감나무골, 거문들, 똥섬, 안틀무시... 정겨운 지명들. 분명히 저마다의 이름도 있고 뜻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명들을 정확하지 않은 민간 어원설 혹은 설화에 의존하기보다는 있는 지명 그대로를 존중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게 현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의 책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