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공기 300원”

농민들이 이 구호를 외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20년 동안 임금은 3배 올랐는데 쌀값은 0.3배 올랐다고 한다. 농민의 땀값은 멈췄고, 생산비와 생활비만 치솟는 현실에서 농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서야 되겠는가.

작년 농민들은 15% 이상 수확이 줄었다고 말했으나 정부의 통계는 달랐다. 올해 쌀값이 올랐다. 그래도 농민이 주장하는 밥 한 공기 300원에 미치지 못한 가격이었지만 말이다. 농식품부는 쌀값이 올라 민생경제가 어려워진다며 농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쌀을 방출하였다. 그러나 농민 중에 쌀값이 올라 돈을 번 사람이 없다. 농민에겐 이미 쌀이 없기 때문이다.

11월 24일, 제2통합 RPC(종합미곡처리장)에서 8개 농협 조합장이 모여 25년 수매가를 결정한다고 하여 농민회 회원들과 제2통합 RPC로 갔다.

벼값은 아직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RPC 창고가 벼로 가득차 마당에까지 벼가 쌓여 있다. 벼농사를 짓는 농민 중 벼를 보관할 창고도, 건조기도 없는 농민은 수확하자마자 농협 RPC에 벼를 맡긴다. 쌓여 있는 벼들이 볼모로 잡혀온 농민같다.

농민들은 수 년 전부터 농민대표가 수매가 결정에 참여하고, 수확기 전에 수매가를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였으나 농협은 요지부동이다. 올해도 조합장들이 농민을 대표한다며 수매가를 결정하였다. 올해 벼값은 삼광(특등기준) 1kg 당 1800원으로 작년보다는 높지만 농민이 주장했던 2200원에는 턱없이 부족한 가격이다.

농민은 생산의 주체지만 가격 결정에서는 객체이다. 농민의 투쟁으로 바꿔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농민는 천하의 근본’이라 했다. 농사 짓는 일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나라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쌀을 의미하는 한자 米(쌀 미) 자를 파자하면 八十八(팔십팔)이 된다. 88번의 농부의 돌봄으로 귀한 한톨의 쌀이 생산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농부의 땀과 수고로 생산된 쌀이 농민에게 희망과 기쁨이 아니라 절망과 한숨의 상징이 되었다.

농업, 농민을 홀대하여 나라의 근간이 흔들인 나라가 여럿 있다. 일본은 그동안의 감산 정책과 생산 기반약화 탓에, 최근 들어 쌀 부족 사태를 겪었다. 스리랑카는 농업 기반을 무너뜨린 정책 실패로 전례 없는 식량위기에 빠졌고, 베네수엘라는 농업을 방치한 대가로 수입 의존 구조가 붕괴하자 국가 전체가 식량난에 빠졌다.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쌀생산국이었던 필리핀은 농업투자를 줄이고 부족분을 수입에 의존하였는데 작년에는 쌀값 급등으로 식량 안보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고 한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농산물 가격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건과는 다르다. 생산 농민에게 생산비 이상의 가격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국민들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공급해야 하는 이중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농가 소득의 안정과 소비자 물가의 안정을 위해 국가가 책임지고 농업정책을 일관되게 수립하고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도 이재명정부도 농업정책에서는 국가의 책임도, 노력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농민의 요구에 농망법이라 망언을 거침없이 내뱉은 송미령장관의 유임이 그 증표이기도 하다.

농민들은 해마다 농협 앞에, RPC 앞에 나락을 쌓고, 곤포를 쌓고, 농기계를 적재하며 수매가 투쟁을 하였지만 농민이 요구하는 ‘밥한공기 300원, 나락값 8만원’은 아직 구호에 불과하다. 그러나 농민의 ‘제대로된 농민값’을 받기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당진시농민회는 피땀으로 키운 곡식의 가격결정 권리를 찾고, ‘제값받는 농산물, 생산의 주인이 되는 농민’을 위한 투쟁에 한결같이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