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순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선물’을 펴냈다. 첫 시집 ‘안부’ 이후 꼭 1년 만이다. 당진문화재단 지원으로 발간된 ‘안부’가 “타인에게 건네는 안부와 위로”에 초점이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충남문화관광재단 ‘충남 문학인 개인’ 부문 공모에 선정돼 나온 책으로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 나를 마주한 시간들”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새 시집의 표지를 처음 마주한 소감에 대해 김 시인은 “하나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표지에는 ‘조용한 위로 당신에게 드립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는 “이 책을 받는 순간 정말 하나의 선물을 받는 느낌이면 좋겠다”며 “‘선물’이라는 제목은 오늘을 정말 열심히 살아낸 삶에게 붙여 주는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표지는 핑크가 섞인 따뜻한 주황 톤이다. 첫 시집 ‘안부’가 보라색이었다면 이번에는 한층 더 포근한 색이다. 김 시인은 “이번에는 따뜻하게 가야겠다 싶었다. 핑크가 들어간 주황색 톤으로 해보자 해서 나온 표지”라며 “디자이너도 ‘색에는 예민하시네요’라고 할 정도로 표지 색 하나를 두고 많이 고민했다. 시집의 얼굴이니까 더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목도 처음에는 “너무 촌스러운 것 아니냐”는 주변 반응이 있었지만, 그는 “받는 순간 선물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선물’을 고수했다.

사물과 풍경에 비친 내면

이번 시집에는 씨앗, 안개, 물고기, 풍경 등 자연과 사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김 시인은 이를 “객관적 상관물이자 은유”라고 표현한다.

그 가운데 ‘물고기 풍경’은 이번 시집의 핵심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어느 날 처마 끝에 달린 물고기 모양 풍경을 보고 적어 내려간 시다. 그는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하는데 하늘이 바다인 듯 거기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더라”며 “그걸 보면서 우리가 이름 붙인 온갖 경계들이 사실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계 안에 우리가 오히려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었다”고 떠올렸다.

그에게 시 쓰기는 “자연과 사물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다. 안개, 씨앗, 물고기 풍경 같은 이미지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시 언어로 풀어내면서 “겹겹이 쌓여 있던 상처나 아픔의 껍질을 벗겨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제 시집 속에는 동시처럼 부드럽게 읽히는 시도 있고 조용하지만 깊은 상실과 쓸쓸함을 품은 시도 있다. ‘작은 씨앗’은 “작아도 괜찮아. 꽃으로 피어날 거니까”라는 구절처럼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시다. 반면 ‘부재의 온도’는 혼자 남겨진 식탁과 조용한 집을 배경으로 “부재에도 온도가 있다”는 사실을 건드린다.

김 시인은 “부재는 쓸쓸함이지만 그 속에도 함께했던 기억이 남아 있기에 나만의 온도가 있다”며 “그래서 그 고요한 식탁도 결국은 ‘나의 집’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를 향한 화해의 시…“노을빛으로 오신 당신”

이번 시집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다. 첫 시집 ‘안부’에서 그가 주로 불러낸 이는 ‘엄마’였다. 그리움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향한 안부가 시집 전체를 채웠다면 ‘선물’에서는 그동안 시 속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여러 편의 시에 모습을 드러낸다.

김 시인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며 “아버지는 제게 미움도, 사랑도 없는 그냥 저 멀리 강 건너에 놓아둔 사람 같은 존재였다”고 고백했다. 집안은 남존여비가 심했고 그는 “여자가 나서면 안된다”, “여자는 조용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번에 상장을 네 장이나 받았지만 혼날까 봐 집에 가져가지 못하고 오는 길에 냇물에 찢어 버린 기억은 오랫동안 무의식 속에 묻어 둔 상처였다.

“너무 큰 상처라 스스로 지워버렸던 것 같아요. 시 치료를 하면서 자기 분석을 계속하다 보니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시를 쓰며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과정 속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아버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항상 강 건너, 산 너머에만 계시던 분이었는데 시를 쓰다 보니 점점 제 곁으로 오더라고요. 멀리서 옆자리에 그리고 결국 사랑으로 품게 됐죠.”

그 변화가 응축된 시가 바로 그가 대표시로 꼽은 ‘노을빛으로 오신 당신’이다. 어느 날 호숫가를 걷다가 물 위에 번지는 노을빛을 보며 그는 문득 “해처럼 뜨겁고 두려운 존재였던 아버지의 빛이 내 안에도 스며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김 시인은 “아버지를 늘 뜨거운 해처럼만 생각했는데, 물 위에 스며드는 노을빛을 보면서 ‘그 빛이 내 안에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가 삶에서 짊어졌던 무게, 말하지 못한 사랑과 침묵이 내 뼈와 언어, 걸음에 새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제는 그 노을빛 속에 선다”로 끝난다. 그는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내 뼈에, 그의 침묵이 내 말에, 그의 걸음이 내 삶에 남았다 생각해서 그대로 시에 썼다”며 “이 시를 쓰면서 저 자신도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이 시를 시집을 대표하는 시로 고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반복해서 쓰는 단어, 겹겹이 벗겨지는 상처

김 시인은 “시가 나를 치유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같은 단어와 이미지를 여러 번 붙잡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는 똑같은 시어를 가지고 여러 번 시를 쓰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똑같은 시어가 절대 똑같지 않거든요. 그때그때 내 모습이 다르게 담겨요. 그 단어에 묶여 있는 상처나 정서를 계속 쓰면서 한 겹씩 벗겨내는 거죠. 한 번 벗겨도 상처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으면 또 한 번 벗기고, 또 한 번 벗기고… 그렇게 겹겹이 쌓였던 것들이 펼쳐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그 단어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아요.”

그래서 ‘안부’에는 엄마에 관한 시가 많았고 이번 시집에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소환됐다. 그는 “25년 동안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 계속 시 속에서 소환되고 있었더라”며 “이번 시집을 작업하면서 ‘내가 그랬구나’ 하고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시집의 뒷부분에는 ‘아직 오지 않은 말’, ‘눈물의 문장’처럼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들을 건드리는 시들이 자리한다.

“우리는 모두 아플 수밖에…병의 이름에 나를 가두지 말아야”

시인이자 시치료 전문가로서 김 시인은 요즘을 “위로를 사서 읽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위로가 위로 같지 않은 시대”라고 덧붙였다.

“요즘은 나를 사랑하자는 말이 유행처럼 됐잖아요. 근데 정작 ‘어떻게’ 나를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위로를 사서 읽는 시대인데 그 말들이 다 비슷비슷해서 오히려 식상하기도 하죠. ‘사랑해’라는 말만큼 세상을 담을 수 있는 말이 없는데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영혼이 있나 의심하게 되는 시대 같아요.”

그는 “다들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지만, 그 아픔을 ‘병들었다’는 말로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누구나 병을 겪을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아픔을 병의 이름 안에 가두지 않는 거예요. 우울증 진단을 받으면 그 말 속에 자기를 가두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치유가 더 어려워요. 이름은 있지만 그걸 내가 어떤 각도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요.”

그는 삶 전체가 “애초부터 아픔과 함께 시작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자궁, 죽음의 산도를 통해 나와요. 처음부터 고통을 겪으며 태어나는 거죠. 그리고 살아간다는 건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아픔은 삶의 구조 안에 원래 들어 있는 거예요. 그 아픔을 평생 가는 병으로 보느냐, 나를 새롭게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 치료 현장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는 ‘자기 이해·자기 수용·자기 공감·자기 통찰’이다.

“이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타인 이해, 타인 수용, 타인 공감, 타인 통찰이 가능해져요. 처음부터 남을 이해하는 쪽으로만 가면, 어느 순간 내 안이 비어 있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결국은 안으로 돌아와야 해요.”

“페이지를 넘기듯, 아직 감당 못할 상처는 잠시 넘겨도 된다”

김 시인은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하면서 ‘책의 페이지’ 비유를 자주 쓴다고 했다.

“우리가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어떻게 해요? 일단 넘기잖아요. 그래도 스토리는 계속 이어지죠.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 당장은 감당이 안 되는 상처라면, 페이지를 넘길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언젠가 다시 돌아와 그 페이지에 머물 수 있는 때가 오거든요.”

그는 “흘러가게 두는 것, 그게 치유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상처라면 ‘지금은 이 페이지를 넘길게’라고 말해도 괜찮아요. 언젠가 다시 펼쳐볼 힘이 생길 때, 그때 돌아와 바라보면 그 상처가 나를 치유하는 장면으로 바뀌어 있기도 하거든요. 저한테는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해 준 게 시였고 누군가에게는 사진이거나 춤, 다른 예술일 수도 있겠죠.”

“너는 혼자가 아니다…먼저 자기 자신을 안아줘야”

김 시인은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학교와 대학, 복지 현장을 오가며 시 치료와 독서치료를 진행했다. 특히 장애인복지관,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장애인부모회 등에서의 집단 프로그램과, 장애인 문학회 ‘달팽이 문학회’ 고문으로 활동하는 경험은 그에게도 큰 배움이다.

“남을 치료해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제 치유가 더 크게 일어나요. 주는 것이 결국 다시 나에게 돌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시 치료를 하면 할수록 제가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청소년들을 만날 때 그는 ‘엄마’라는 단어를 조심해서 쓴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엄마는 보살피는 엄마, 따뜻한 엄마일 수 있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엄마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버리고 간 엄마, 아이의 수급비를 착취하는 엄마, 여러 사연을 가진 엄마들이 많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엄마가 널 사랑한다’는 말은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아빠는 너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존재다. 그것만으로도 부모는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고, 네 존재의 시작이다. 그 이후에 네가 겪는 아픔과 어려움은 너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도 너는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다…이 책이 작은 ‘선물’이 되기를”

인터뷰 말미 그는 이번 시집을 찾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렇게 답했다.

“이 시집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거예요. ‘사랑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사랑이 있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순간, 다 기적이었고 사랑이었더라고요. 조금 더 짧게 말하면 ‘그 모든 순간에 있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김 시인은 “요즘은 위로를 사서 읽는 시대지만, 그 위로가 진짜 위로가 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책이, 오늘을 힘겹게 견뎌낸 누군가에게 ‘괜찮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해 주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는 시를 쓰면서 큰 위로를 받았어요. 이 작업을 통해 제가 되살아나고 또 누군가의 삶도 조금은 가볍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을 ‘선물’이라고 지었어요. 제게도, 누군가에게도 조용한 위로가 되는 선물이 되기를 바라요.”

<시집 '선물' 내용 중 대표 시>

노을빛으로 오신 당신

-김선순-

바라볼 수조차 없던 해는

그 자체로 아버지였다

너무 멀고, 너무 뜨겁고,

너무 강해 다가설 수 없던

그러나 해가 지면

물 위로 번져드는 그 노을빛이

바로 내 안에 스며든 아버지의 숨결

세상에서 사라진 그가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며 숨 쉬는 듯하다

그의 무게는 나의 뼈에

그의 침묵은 나의 말에

그의 걸음은 나의 하루에 남았다

한 때는 너무 멀고, 너무 낯설고

때론 두려웠던 그 빛을

이제는 가만히 내 안에 들인다

당신이 남긴 노을빛은

그리움으로

버티는 힘으로

내 삶을 비추고 있음을

나는 오늘, 그 노을 속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