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무속신앙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예전에는 중장년층이 관심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젊은층이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라고 하는 서울 연남동에는 타로와 사주를 보는 집들이 즐비하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대중매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무속 관련 프로그램이 버젓이 등장하는 것을 볼수 있다. 과거 무속은 음지에 있었다면, 이제는 양지로 나와 엔터테인먼트로 발돋음한 것을 볼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전국민의 48.3%가 최근 3년 사이에 무속을 이용한적이 있다고 하며, 무속인은 1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젊은 무속인들이 유튜브, 인터넷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이전에는 점집을 찾아갔다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든지 무속인들과 만날수가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용이해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렇게 무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이 시대가 너무 빨리 변화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무속을 찾고 있다. 더불어 이 사회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가지 이유로 정신적,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0대 이후 세대는 심리적인 위안과 안정감을 얻고자 무속을 찾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이 기독교인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인중에서 20%가 무속을 이용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30%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속이 가진 특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속의 가장 큰 특징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다. 개인의 출세, 개인의 잘됨, 개인의 건강, 개인의 부유함에만 관심이 있다. 무속 신앙은 나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의 유익, 공동체의 번영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속신앙은 이렇게 오로지 자기의 욕망을 위하기 때문에, 정의나 법 따위는 쉽게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무속이 권력이나 정치와 손을 잡게 되면 사회 정의가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독교도 무속화될수 있는데, 그것이 기복신앙이다. 하나님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황금 송아지 사건이고, 그것이 발전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혼합신앙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고, 사회는 악이 만연하고, 부패하고, 타락하고 말았다. 마침내,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던 공동체가 파괴되었고,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무속신앙을 경계하신 것이다.

오늘날 무속신앙이 번성하는 것에는 교회에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교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미래를 주관하고 계시다는 하나님 주권 신앙을 견고히 하며, 복음 안에서 약속된 승리를 향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더 나아가서 교회의 공동체성을 강화시켜 나아가야 한다. 굳이 무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공동체 안에서 심리적인 위로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가장 안전한 곳이 될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교회가 하나님의 주권과 복음의 능력과 공동체성을 회복할 때 건강한 시민과 건강한 사회를 이룰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