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이상화는 일제 강점기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이렇게 외쳤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한 문장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빼앗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싶어 하는 한 시대의 절규였다. 얼어붙은 겨울 같은 현실 속에서도 언젠가 봄이 오리라는 믿음을 향한 질문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봄을 기다린다. 겨울은 춥고 어둡고 생명이 움츠러드는 계절이지만, 봄은 따뜻하고 밝으며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아도 마치 긴 겨울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경제는 불확실하고, 정치적 갈등은 깊어지며, 국제 정세와 안보 상황도 사람들에게 불안을 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도 쉽게 얼어붙는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차가워지고, 삶의 희망도 쉽게 움츠러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언제쯤 봄이 올까”라고 묻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봄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농부는 겨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또 다른 농부는 다르다. 그는 겨울 동안 씨앗을 준비하고, 밭을 갈고, 돌을 골라내며 땅을 옥토로 만든다. 눈 덮인 들판을 바라보며 그는 생각한다. “봄이 오면 이 땅에 씨를 뿌릴 것이다.”
이 농부에게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봄은 기회의 계절이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봄을 애타게 기다린다. 왜냐하면 이미 마음속에 씨앗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준비된 사람만이 봄을 기다린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 봄은 그저 또 하나의 계절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의 밭을 갈아 놓은 사람, 믿음의 씨앗을 준비한 사람, 삶의 의미를 준비한 사람에게 봄은 새로운 시작의 계절이 된다.
성경 속 인물 가운데 사도 바울은 특별한 삶의 태도를 보여 준다. 그는 인생의 사계절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풍족했고, 때로는 궁핍했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환영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이 고백은 단순한 인내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계절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의 고백이다. 바울은 봄만 기다리며 살지 않았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심지어 겨울에도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미를 발견하며 살았다.
어쩌면 진정한 삶이란 사계절을 모두 누리며 사는 삶일지도 모른다. 봄만 좋아하는 사람은 겨울이 오면 불행해진다. 그러나 사계절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겨울 속에서도 배움을 발견하고, 가을 속에서도 감사함을 발견하며, 여름 속에서도 열매를 기뻐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에도 겨울 같은 시간이 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마음이 지칠 때, 세상이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봄을 기다린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그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아니면 봄을 준비하는 사람인가.
밭을 갈지 않은 사람에게 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씨앗을 준비하고 땅을 옥토로 만든 사람에게 봄은 기쁨의 시작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리는 매번 봄만 기다리며 살 것인가?
아니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살 것인가?
인생의 깊이는 봄의 길이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계절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로 결정된다. 겨울 속에서도 준비하고, 가을 속에서도 감사하고, 여름 속에서도 수고하며, 봄 속에서도 겸손하게 씨를 뿌리는 사람—그 사람이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기다리는 봄은 이미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 속에서도 밭을 갈고 씨앗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날 문득 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