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당진은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생산 도시이자 국가 전력망의 핵심 거점이다. 그러나 발전소와 송전선로, 각종 기반 시설 부담은 지역이 떠안고 정작 혜택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으로 송전망 확대가 본격화 되면서 당진은 또다시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이에 당진시대는 이번 기획을 통해 당진을 둘러싼 송전선로 계획의 실체와 지역사회 영향, 대안은 무엇인지 차례로 짚어본다.
당진은 왜 늘 발전소와 송전선로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됐을까.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발전소가 들어섰고 그 전기를 다시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송전선로가 깔렸다. 당진환경운동연합과 충남환경운동연합은 이 구조의 출발점을 “수도권과 가까운 바닷가”라는 당진의 지리적 조건에서 찾았다.
황성렬 당진환경운동연합 전 의장은 “수도권 사람들은 전기를 쓰는 건 좋아하지만 발전소는 싫어한다”며 “그렇다 보니 수도권과 가깝고 바다를 낀 충남 당진·태안·보령으로 발전소가 밀려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화력발전소는 대량의 석탄 등 연료를 들여와야 하고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수증기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규모 화력발전소는 바닷가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황 전 의장은 “바닷가가 필요한 이유는 냉각수와 연료 수송 때문”이라며 “당진이 선택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한 가장 가까운 해안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765kV 초고압 송전선로도 당진에서 시작
당진에 발전소가 들어서자 송전선로도 뒤따랐다. 유종준 충남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송전선로가 필요했고 그 결과 당진·태안·보령 같은 발전소 지역에 송전선로가 집중됐다”고 말했다.
특히 당진화력에서 신서산, 신중부, 신안성으로 이어지는 765kV 송전선로는 국내에서 처음 도입된 초고압 송전선로로 설명됐다. 765kV는 345kV 송전선로 두 개보다 더 많은 전력을 보낼 수 있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방식이지만 지중화가 어렵고 고장 시 대규모 정전 위험이 크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유 사무국장은 “경제성만 보면 765kV가 유리했지만 문제는 지중화가 어렵다는 점”이라며 “주민 피해가 고스란히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 765kV: 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로. 대규모 전력을 장거리로 보내는 데 쓰인다.
※ 지중화: 전선을 땅속에 묻는 방식. 철탑 노출을 줄일 수 있지만 비용과 기술 문제가 따른다.
“처음엔 몰랐다”…20년 이어진 송전선로 싸움
초기에는 주민들의 반발이 크지 않았다. 발전소가 들어오면 전기를 보내기 위한 선로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전소 증설과 송전선로 추가 계획이 반복되면서 지역의 인식은 달라졌다.
황성렬 전 의장은 “처음에는 주민들이 송전선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몰랐다”며 “본격적인 저항은 당진화력 5·6호기 증설 문제와 이후 북당진~신온양 345kV 송전선로 문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당진에서 신온양으로 가는 노선은 당초 당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형태였다”며 “당진시와 주민대책위, 환경단체가 함께 대응하면서 일부 노선 변경과 지중화 논의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황 전 의장은 “당진 송전선로 싸움은 20년 가까이 이어졌다”며 “한전 백서에도 오래 끌었던 송전선로 갈등 사례로 기록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게는 뿌듯한 경험이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원수 같은 사례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은 것은 갈등과 피해”
환경단체는 송전선로가 남긴 가장 큰 문제로 주민 간 갈등과 생활 피해를 꼽았다.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마을에서는 찬반 갈등, 노선 갈등, 보상 갈등이 반복됐고 공동체 내부의 상처가 오래 남았다는 것이다.
황 전 의장은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모든 노선마다 찬성과 반대, 경로 문제로 주민들이 싸웠다”며 “결국 전기는 한전과 국가 계획대로 수도권으로 가고 지역에는 갈등과 피해만 남았다”고 말했다.
주민 피해는 건강 문제, 소음, 스트레스, 재산권 하락 등으로 제기돼 왔다. 다만 건강 피해의 경우 과학적으로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워 법적 배상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유종준 사무국장은 “송전선로 주변에서 암 환자가 늘었다는 주민 증언과 조사 사례는 계속 있었지만 법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며 “그럼에도 주민들은 소음과 불안, 스트레스를 실제로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송전선로가 지나가면 토지 담보 가치가 떨어지고 집이나 상가를 짓는 데도 제약이 생긴다”며 “주민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것은 재산권 피해”라고 설명했다.
※ 코로나 소음: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을 때 송전선 주변에서 발생하는 방전성 소음.
※ 풍소음: 바람이 송전선로와 철탑을 지나며 발생하는 웅웅거리는 소리.
이번에는 호남 전기를 수도권으로
과거 당진의 송전선로가 발전소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는 성격이 다르다. 호남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충남을 경유하는 노선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종준 사무국장은 “이번 호남~수도권 송전선로는 충남이 생산하지도 소비하지도 않는 전기가 지나가는 구조”라며 “재생에너지가 생산되는 지역으로 산업이 이동한다면 막대한 송전선로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문제의 근본 원인을 “수도권 일극주의”라고 진단했다. 유 사무국장은 “수도권에 대규모 반도체 국가산단을 만들고 그곳에 필요한 전기를 호남에서 끌어오겠다는 발상 자체가 수도권 일극주의의 표현”이라며 “그 과정에서 충남은 또다시 경과지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진 6개 읍면도 검토 대상
자료에 따르면 청양 개폐소에서 평택 고덕 변전소로 이어지는 노선과 관련해 당진에서는 합덕·우강·면천·순성·신평·송악 등 6개 읍면이 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구체적인 리 단위 노선이나 최종 경과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황성렬 전 의장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20년 전과 같은 방식이 다시 반복되는 것 같아 허탈하다”며 “지역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정부와 한전이 계획을 세우고 따라오라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의 경험을 전국의 다른 지역과 나누고 이번에는 제도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늘 당진 인가
당진이 발전소와 송전선로의 중심이 된 이유는 분명하다. 수도권과 가까운 해안지역이자 이미 발전소와 산업단지, 기존 송전망이 집중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왜 국가 전력 정책의 부담은 반복해서 당진과 충남에 집중되는가 하는 점이다.
유종준 사무국장은 “결국 핵심은 수도권 중심 구조”라며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한 지방은 계속 발전소와 송전선로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당진은 국가 전력 공급의 중요한 축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환경 부담, 주민 갈등, 재산권 피해도 함께 쌓였다. 이번 송전선로 논란은 단순히 새로운 철탑이 들어서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당진이 앞으로도 수도권 전력 공급을 위한 통로로 남을 것인지 묻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