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마을을 품고 있는 산과 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지명 속에는 저마다의 유래와 전설, 그리고 잊혀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사라진 마을, 농촌 고령화로 전통의 맥이 끊길지 모르는 자연마을들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는 ‘마을 아카이브 IV - AI 디지털 기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당진지역 마을의 역사·문화·인물·전설·생활사를 기록하는 ‘우리마을 이야기’ 기획취재를 연재한다.
※ 이 기사는 2026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사업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당진2동 용연1통은 이름부터 오랜 세월 품어온 이야기가 깊다. 마을 사람들은 용연1통을 두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마을”이라고 말한다. 마을 이름의 유래부터 조선시대 교통로,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세운 학교와 회관, 그리고 지난해 수해를 함께 견뎌낸 공동체 정신까지. 용연1통의 역사는 결국 ‘함께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마을 이름에 담긴 역사
용연(龍淵)은 한자로 용 용(龍), 못 연(淵)을 쓴다.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예전 이곳 하천은 굽이치며 흐르다가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용이 올라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그렇게 ‘용이 오른 못’이라는 뜻의 용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역천 역시 중요한 역사 자원이다. 조선시대 면천읍성이 당진 일대를 관할하던 시절, 이 길은 해미와 홍성, 면천을 오가던 주요 통로였다. 사람과 말이 쉬어가는 역참 기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막도 형성됐다.
허순 노인회 사무장은 “지금으로 치면 휴게소 같은 곳이었다”며 “예전에는 길손들이 쉬어가고 말을 갈아타던 중요한 길목이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들 교육 위해…주민들이 직접 학교 세워
용연1통 주민들의 가장 큰 자랑은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다.
과거 마을 아이들은 성당초등학교까지 5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다녀야 했다. 비포장길을 따라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하는 불편을 겪자 주민들은 직접 학교를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당시 현금이 귀했던 시절 주민들은 생활 형편에 따라 쌀 한 가마, 두 가마씩 내놓았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약 3000평 부지를 마련해 교육청에 기부했고, 이후 교육청이 학교를 건립하면서 용연초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오선근 새마을지도자는 “먹고 살기도 힘들던 시절이었지만 아이들 교육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며 “마을 전체가 학교 하나 세우겠다고 힘을 합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지원 없이 마을회관 건립…스스로 살림 꾸린 공동체
용연1통은 마을회관도 스스로 만들었다. 1987년 농협중앙회 농업대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500만 원을 종잣돈 삼아 부지를 마련했고 이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회관을 건립했다. 건축 기술을 가진 주민들은 품삯도 받지 않고 재능기부에 나섰고 다른 주민들은 자재 마련과 노동력을 보탰다.
특히 마을은 오래전부터 자체 기금을 운영해왔다. 쌀을 공동 자산처럼 모아 운용하고, 이를 통해 마을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다. 현재도 회관 2층과 창고 임대 수익으로 마을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허순 노인회 사무장은 “요즘 다른 마을은 기업이나 외부 지원에 기대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스스로 자립하는 방식을 택해왔다”며 “그게 우리 마을의 가장 큰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수해…공동체 힘으로 버틴 시간
지난해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용연1통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역천 물이 마을 안까지 밀려들며 주택이 침수됐고 주민 상당수가 마을회관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다. 일부 주민들은 아직도 집을 복구하지 못해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 애써 지켜왔던 유치원 시설마저 침수 피해를 입으며 결국 폐원 수순을 밟게 됐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졌다.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해결했고, 타지에 있는 자녀들과 종교단체, 지역사회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금자 용연1통 통장은 “작년 수해는 평생 처음 겪은 피해였다”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챙기고 함께 버텨낸 것이 결국 마을을 지켜냈다”고 말했다.

고령화 걱정 속에서도…“따뜻한 공동체 이어가야”
지금 용연1통의 가장 큰 고민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다. 원주민들은 점차 줄어들고 젊은 세대 유입은 많지 않다.
서울에서 이주해 20년째 살고 있는 이 통장은 “이 마을은 예전 어르신들이 닦아놓은 따뜻한 공동체 문화가 가장 큰 자산”이라며 “젊은 세대와 기존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며 지금의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순 노인회 사무장 또한 “예전 선배들이 후손을 생각하며 학교를 만들고 마을 기틀을 세웠듯 지금 세대도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며 “앞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 현실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용연1통은 단순한 농촌마을이 아니다. 용이 올랐다는 전설이 남아 있고, 길손들이 머물던 역참의 기능을 했으며, 주민 스스로 학교와 회관을 만들고 공동체를 지켜낸 마을이다.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용연1통을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이다.
“우리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