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8시가 가까워지자 기지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와 학교 주변 통학로 곳곳에 형광 조끼를 입은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손에는 교통안전 피켓을 들고 아이들의 발걸음과 차량 흐름을 동시에 살폈다. 학부모들만 나선 것이 아니었다. 기지시리 마을 주민과 입주자대표, 동대표, 기지시리 청년회, 바르게살기위원회, 새마을지도자협의회, 틀못 봉사회, 적십자 봉사회, 송악읍 관계자들까지 지역사회 전체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나섰다.
기지초에서 시작된 이 특별한 등굣길 풍경은 단순한 교통봉사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학부모 부담 덜고…마을 전체가 등굣길 책임진다
이번 교통안전 봉사는 학부모회가 겪고 있던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시작됐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 학부모 교통 봉사 순번이 비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고 학교 주변 도로 구조상 아이들의 안전을 학부모와 학교만 책임지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커졌다.
이에 기지시리 주민들이 직접 나섰다. 현재 월요일은 마을 주민들이, 화요일은 지역 의원과 학부모회, 수요일은 바르게살기위원회, 목요일은 학부모회와 적십자 봉사회, 금요일은 틀못 봉사회와 송악읍 그리고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등 지역 단체들이 맡아 일주일 내내 교통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현정 기지초 학부모회장은 “처음에는 과연 될까 걱정도 많았는데 지금은 아침마다 나가보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고 있다”며 “정말 벅차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학교 역시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김현덕 교장은 “작년에는 등교 시간 학생 안전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학부모 봉사에 빈자리가 생기면 교직원들이 직접 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지역사회가 함께하면서 학교는 학교 안 아이들을 더 세심하게 살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손자·손녀 같아요”…세대 잇는 따뜻한 공동체
봉사에 참여한 주민들의 반응도 남달랐다. 이병배 바르게살기운동송악 지회장은 “봉사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라며 “이곳이 내 모교이기도 해서 더욱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마다 아이들을 보면 꼭 손자 손녀 같고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며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이라도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마을 어른들이 등굣길을 지키자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인사도 늘었다.
편경만 총동문회장은 “아이들 가운데 10명 중 한 명 정도는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넨다”며 “그 밝은 표정을 보면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아이들을 잘 키워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학교 측도 인성교육과 연결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김 교장은 “학생회에서 5월 가치 활동 주제를 ‘감사’로 정해 교통봉사하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자는 활동도 진행했다”며 “학생들에게도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 서 보니…드러난 통학환경 문제
하지만 현장에 직접 서본 주민들은 기지초 주변 통학환경의 구조적인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학교 주변은 도로로 둘러싸여 있고 출입구가 세 군데로 나뉘어 있어 등하교 시간 차량과 학생 동선이 복잡하게 얽힌다. 특히 버스정류장 주변은 인도와 주차공간이 부족해 아이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병옥 이장은 “버스 두 대만 서 있어도 아이들이 걸을 공간이 부족하다”며 “오래전부터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후문 주변 상황도 비슷하다. 일부 통행로는 사유지 문제까지 얽혀 있어 교육청에서도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현덕 교장은 “해당 토지가 여러 필지로 나뉘어 있어 매입이나 임대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학생 안전을 위해 가능한 방법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7년째 제자리…“아이 안전이 먼저다”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기지초 앞 교차로에 ‘X자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해왔다.
학생들이 여러 방향에서 이동하고 대형 차량 통행도 많아 동시 보행 신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거리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7년째 반려가 반복됐다.
이에 이 이장은 “올해 다시 심의를 요청한 상태”라며 “다행히 7월 6일부터 시범운영을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제철 통근버스와 대형 차량들이 이 도로를 많이 이용하면서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학교 주변에 직접 서 보니 왜 위험한지 더 절실히 알게 됐다”며 “우리가 현장을 알아야 행정과 경찰에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아이들 지키는 일…마을이 함께 해야”
기지초의 사례는 단순한 교통봉사를 넘어 지역 공동체가 다시 연결되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학부모들은 마을 어른들의 참여에 감사함을 느끼고 아이들은 자신들을 지켜보는 지역사회의 존재를 경험하고 있다. 세대 간 단절이 심화되는 시대에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왔다. 단순한 교통안전 피켓 대신 “안녕하세요”, “오늘도 안전하게 학교 가요”, “인사하는 네가 최고야” 같은 문구를 활용해 아이들이 즐겁게 인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이현정 회장은 “처음에는 부탁드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너무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고 있다”며 “학교와 마을, 학부모가 연결되는 정말 소중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옥 이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웃으면서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없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지속적인 봉사를 이어나가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