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기타를 잡고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내가 음악을 하기 위해 이번 생에 태어난 거구나’라고 느꼈어요.”
지난 4월 당진에 삶의 터전을 옮긴 싱어송라이터 박상도 씨에게 음악은 직업 이전에 삶 그 자체다.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기타 소리와 노래를 들으며 자랐고, 지금도 그의 삶은 음악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박상도 씨는 공연을 위해 달려온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자연 속에서 오래 남을 좋은 곡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당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태교로 함께한 기타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상도 씨는 중·고등학교 시절 가수 김광석, 신해철, 강산애, 윤도현, 들국화 등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 음악은 태어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든 존재였다. 어머니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박상도 씨를 임신했을 때도 늘 기타를 연주했다. 어린 시절에도 어머니의 연주를 들으며 자랐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부모님이 인천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가수의 공연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그가 음악에 빠져든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어머니 유선영 씨에게 기타를 배우며 집에 늘 놓여 있던 기타를 처음 손에잡았다.
만화가를 꿈꾸던 학생
그러나 처음부터 음악을 직업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꿈은 만화가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대학도 미술대학 회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 음악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다. 혼자 즐기던 음악을 사람들과 함께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박상도 씨는 “20살 겨울방학 때 부천의 한 라이브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싱어송라이터 꿈꾸며 밴드 만들어
23살 겨울에는 친동생이자 드러머인 박상명 씨와 함께 밴드 ‘슬리핑 잼’을 결성해 직접 만든 곡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타보다 노래를 중심으로 하는 가수를 꿈꿨지만 활동을 이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박상도 씨는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클랩튼, 존 메이어처럼 기타를 메인으로 연주하면서 노래도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다”며 “기타리스트적인 색깔을 더 앞세운 음악을 하기 위해 2007년 ‘써드스톤’을 결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팀 이름도 지미 헨드릭스의 곡 ‘Third Stone from the Sun’에서 따왔다”고 설명했다.
음악 활동이 길어질수록 그가 추구하는 장르도 변했다. 그는 “처음에는 포크 록에 가까운 음악을 했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접어들면서 사이키델릭 록으로 바뀌었다”며 “몽환적이고 명상적이며 사람의 내면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음악이 사이키델릭 록”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에는 그가 중학교 시절부터 겪었던 특별한 경험들도 영향을 미쳤다. 박상도 씨는 “중학교 때부터 유체이탈이나 루시드 드림 같은 경험을 했다”며 “2007년 써드스톤 1집에는 그 경험을 담은 ‘루시드 드림’이라는 곡이 있고, 3년 전 발매한 앨범의 첫 번째 트랙도 유체이탈을 뜻하는 ‘아스트랄 프로젝션(Astral Projection)’이다”고 말했다.

록을 접목한 퓨전국악 활동
불꽃같은 20대를 보내며 쉼 없이 음악 활동을 이어왔지만 2011년 그는 큰 좌절을 겪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기타 한 대만 들고 미국으로 떠났다. 박상도 씨는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며 “특히 들국화 원년 멤버였던 조덕환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화려한 무대에 설 때와 관객이 거의 없는 내 밴드 공연 사이의 괴리감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 귀국한 뒤 조금씩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3년 발표한 앨범은 한국대중음악상 후보에 올랐고, 2014년에는 국내 대부분의 대형 록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2015년에는 영국 리버풀 사운드시티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우리 민요‘쾌지나 칭칭 나네’를 사이키델릭 록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박상도 씨는 “록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우리 민요를 편곡해 공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전통연희단 잔치마당과 퓨전국악밴드 차차웅에서 활동하며 국악과 록을 접목한 음악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세계 무대에서 가장 한국적인 음악은 결국 우리 국악을 기반으로 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며 국악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음악, 마르지 않는 샘”
박상도 씨는 지난 4월 당진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 어머니의 고향인 당진은 명절마다 찾던 곳이었다. 잠시 쉬어갈 생각으로 부모님이 거주하는 당진 집에 6개월 정도 머물 계획이었지만, 지내면서 이곳에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상도 씨는 “예전에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최대한 많은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이제는 공연보다 좋은 곡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편안한 자연 속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당진에 내려와 탁 트인 들판과 맑은 하늘 아래에서 흙냄새를 맡고 바람을 맞으며 새소리를 듣다 보니 창문도 없이 지내던 작업실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음악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제는 사방이 막힌 지하 연습실에서는 음악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진의 자연 속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올해 말 발매를 목표로 정규 솔로앨범 작업에 한창이다.
“음악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활력이 넘칩니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종일 밖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껴요. 제게 음악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존재입니다.”





